30대 그룹 초임 삭감 ‘재원 활용’이 관건

‘의미는 크다. 문제는 재원의 활용이다.’

25일 30대 그룹이 결정한 대졸초임 삭감에 대한 시각이다. 30대 그룹의 이번 조치는 우선 인력 감소를 골자로 한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등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투어 구조조정에 나서는 상황과는 분명 차별이 된다.

정병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도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기업들도 미국이나 선진국 기업들처럼 몇 천명 줄이면 된다”면서 “그렇지 못하니 고육지책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조조정에 대해) 노조도 있고 해서 어렵다”며 “쉽게 조정이 가능한 부분부터 손을 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30대 그룹의 이날 결정은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되, 새로 입사할 신입사원의 임금을 줄여 채용을 독려하겠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그룹사 초임삭감 결정으로 일자리 창출을 모토로 해온 정부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었다. 공기업이 최대 30% 임금 삭감에 동참하고, 일자리나누기(잡셰어링)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기업이 맞장구를 쳐준 셈이다. 기업입장에서도 초임 삭감을 계기로 높은 임금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삭감한 재원이 취지에 맞게 제대로 활용되는가 여부다. 구체적으로 신규 고용의 실천여부다. 전경련이 배포한 참고자료에는 삭감재원 활용방안에 대해 ‘일자리 지키기·나누기에 사용(고용안정, 신규채용 및 인턴 채용)’으로만 돼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경련측은 ‘그룹별로 다르다’ ‘지금 파악이 안된다’는 식의 답변이었다. 기자들의 의문이 이어지자 “앞으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겠다”고며 한발 물러섰다.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에 맞춰 다소 급조한 냄새가 나는 대목이다. 다행스럽게 삼성과 LG그룹은 10∼15%줄이고, 이에 대해 발생하는 여력은 고용안정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신규 채용계획은 세부계획을 통해 밝히겠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그룹사의 이같은 발표는 선언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30대 그룹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와 전경련은 이번 조치가 임금 하향을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항간의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한 것도 문제다. 전경련은 그동안 우리나라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수준이 경쟁국에 비해 너무 높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전경련은 이날 1인당 국민소득(GNI)대비 대졸초임도 우리나라가 130으로 중국(212.5)을 제외한 일본(55.6) 싱가포르(68.7)에 비해 크게 높다고 지적했다. 최근 원화가 크게 약세를 나타내고 있어서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기존 직원과 앞으로 들어올 신입직원과의 임금차를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그룹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번 조치가 바로 시행된다면, 그룹내에서도 며칠 늦게 입사가 확정됐다는 이유로 최대 1000만원 이상 임금이 줄어든다.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도 이에 대해 “합리적으로 조정이 돼야 할 것”이라며 “기존 임직원들에게는 2~3년간 급여를 동결하고 늦게 시작한 사람은 인상을 하는 것이 방법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방안이 현실화할 경우 초임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잉여인력을 유지시키는 수단이 되어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권상희·김준배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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