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실속이 중요하다.”
정부의 국가정보화 사업 조기발주를 놓고 업계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쏟아내는 말이다. 정부부처마다 조기발주 실적을 월별로 집계해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업계에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냉소만 가득하다. 일정만 앞당기는 ‘눈속임’으로는 어림없다는 반응이다.
경기 부양에 하루가 급한 정부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그래도 칼자루는 정부가 쥐고 있다. 경기 침체로 ‘밑지는 장사’는 결코 할 수 없는 시장구조라면 하루빨리 수지를 맞춰주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수혜자 중심 정책 전환 시급=국가정보화 사업의 잇따른 유찰 사태는 톱 다운(Top Down)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의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시장과 업계를 살리겠다고 하면서 정작 시장과 업계의 변화는 꼼꼼히 살피지 않은 오류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정부가 이 사태를 하루빨리 수습하려면 업계와 진정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문제의 핵심은 저가입찰마저 응할 수 없는 시장환경이다. 그런만큼 사업마다 예산을 늘리지 않고서는 해결 방법이 없다. 당장 환율이 작년보다 40%가량 인상된 점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정부의 마인드 변화도 필요하다. 정부는 올해 국가정보화 예산을 작년보다 7%가량 삭감했다. 사업마다 경비 절감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히 최근 행정안전부, 지식경제부 등 주요 정보화 추진 부처가 추경예산에 정보화 사업을 대거 반영하는 이른바 ‘디지털 뉴딜’을 추진 중이다. 실속 있는 조기발주를 위해 예산 증액에 속도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셈이다.
IT서비스업체 한 임원은 “외환위기(IMF) 시절 정보화 근로사업에 무려 1조원을 투입하고도 담당 공무원들의 감사를 면책해줄 정도로 정부는 시장 위주의 정책을 펼쳤다”며 “지금도 IMF와 맞먹는 경제위기인만큼 정부가 경비 절감 논리를 접어두고 ‘돈맥경화’에 걸린 시장을 깨울 더욱 공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소업체 생존 문제도 고민해야=중소업체들은 조기발주 유찰 사태로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쉰다. 턱없이 낮은 가격이라도 대기업 IT서비스업체가 사업을 수주하게 되면 ‘영원한 을’인 중소 협력사들이 원가 이하로 제품을 공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기업들의 저가입찰 관행이 가능했던 배경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유찰 사태를 계기로 예산 확대는 물론이고 경제적 약자인 중소업체들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도 심도 있게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들어 확대된 SW 분리발주를 적극 장려하는 한편 입찰 심사에서 중소업체와 상생하려는 사업자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용효과가 높은 중소 SW업체에 돈이 풀려야 일자리 창출 효과도 바로 나타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공간지리정보 SW 개발업체 한 사장은 “경기침체로 민간투자가 위축되면서 공공 부문 수주에 사활을 건 대기업들은 중소업체들을 배제하고 자신들만의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며 “기본 체력이 약한 중소업체들을 정부가 챙겨주지 않으면 현재로선 부도로 가는 길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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