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낭보다. 적자 행진을 거듭해온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지난 10월을 기점으로 마침내 흑자로 돌아섰다. 흑자폭 역시 월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인 49억달러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지고 있다. 11월에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고 내년 역시 경상 흑자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 역시 조심스럽지만 흑자 기조 정착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흑자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사 기관인 한국은행도 불완전 흑자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은은 10월 경상수지는 상품 및 경상이전수지가 큰 폭의 흑자로 전환되고 소득수지 흑자도 늘어난데다 서비스수지 적자는 축소됨에 따라 전월 13억5000만달러 적자에서 49억1000만달러 흑자로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상품수지는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큰 폭 하락으로 수입이 전월에 비해 크게 감소한 데 힘입은 것으로 해석했고 서비스수지는 여행수지가 흑자로 전환되고 운수수지 흑자도 늘어남에 따라 적자 규모가 전월의 12억4000만달러에서 5000만달러로 크게 축소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소득수지는 이자수지 흑자가 큰 폭으로 늘어남에 따라 흑자 규모가 14억1000만달러까지 확대됐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수출이 위축된 가운데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고 해외여행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 흑자의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수출이 늘어나면서 흑자를 달성하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정상적인 기조인 데 비해 10월에는 거꾸로 수입 축소가 1등 공신인 셈이다. 세계 최고의 고환율 덕분이겠지만 극단적으로는 불경기에 편승한 흑자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실제로 경상수지의 암적 존재였던 여행수지 적자가 확 바뀌었다. 고환율과 씀씀이 줄이기에 나선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자제한 것이다. 수출과 수입이 한꺼번에 감소하는 것은 곧 성장 잠재력의 후퇴를 의미한다. 사치성 소비재 수입 감소야 당연하지만 수출용 원자재 수입 축소가 주 원인이 된 것은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여기에 유학비용 송금 등이 줄어들고 반대로 해외에서 들어온 액수가 급격히 커진 것도 비슷한 사례에 해당한다.
특히 그간의 무분별한 외화 차입으로 금융 위기를 자초한 금융권이 엄청난 규모의 달러를 상환하고 주식시장의 외국인 역시 대거 주식을 처분해 빠져나간 돈이 사상 최대에 이르러 흑자폭을 갉아먹은 것은 불행한 일이다. 가뜩이나 외환보유고 2000억달러 선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노심초사하고 있는 판에 이들의 자본수지 유출만 없었더라도 흑자 규모는 훨씬 확대되고 달러 보유 역시 숨통을 틔울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0월 경상수지 흑자는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시사점을 던져준다. 상품수지 흑자 등 유지, 발전시켜야 할 분야와 자본수지 유출 등 앞으로 정부가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분야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흑자 기조는 확고히 정착시켜야 하지만 우리 정부와 경제의 역량은 이제부터 시험대에 오른다. 환호성을 지르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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