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T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뒤따라 다국적 IT기업의 실적도 주춤하면서 이들 기업의 위상도 떨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법인이 ‘영업사무소’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서 거둔 수익을 재투자해 ‘윈윈’하는 선순환 구조보다는 오로지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영업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다국적 기업 본사가 운영 효율화라는 목적 아래 현지법인 기능을 주요 거점 단위로 집중화하면서 영업 외의 지사 역할은 축소되는 분위기다. HP는 이달 시작된 2009회계연도부터 주력 사업부인 테크놀로지솔루션그룹(TSG)의 운영(Operation)·홍보(PR)·마케팅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각 지사에서 해당 지역본부로 이관했다.
‘COE(Center Of Expertise)’로 불리는 주요 거점이 각 지사의 해당 업무를 조정·관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HP의 해당 업무 담당자들은 근무지는 한국이되, 싱가포르에 위치한 아태지역본부 소속으로 일한다.
IBM 역시 수년 전부터 ‘글로벌통합기업(GIE)’ 전략을 통해 재무·구매·인사 등의 기능을 ‘COE(Center of Excellence)’에 배치하고 있다. 각 국가별로 중복돼 있던 지원 기능을 지역 인프라 및 인적 자원을 고려해 최적의 위치에 집중화한 것이다. 아태 지역에서는 중국·인도·호주·필리핀·말레이시아 등이 각 업무별 COE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국IBM에는 이러한 기능이 없다.
일부 기업은 국내에서 활동중인 법인 대표와 실제 등기상 대표이사가 다른 경우도 있다. 델인터내셔널(이하 델코리아)은 대외적으로 김인교 사장이 대표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한국법인의 대표이사는 델 북아시아 대표를 맡고 있는 제임스 마크 메리트다. 델코리아의 언론홍보 업무를 겸하고 있는 델 일본지사는 이의 배경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EMC도 실제 대표이사로 등재된 인물은 김경진 사장이 아니라 폴 토마스 다시에 EMC 본사 법무대표(수석부사장)다. EMC는 기업자산 관리 차원에서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모든 해외 법인의 대표이사를 다시에 부사장이 맡게 했다.
이처럼 한국법인이 영업사무소 이상의 역할을 하기 힘든 구조로 바뀌면서 짧게는 1분기 실적만 삐끗해도 지사장 교체설이 나도는 형국이다. 특히 최근 들어 경기침체와 환율급등으로 다국적 기업의 영업환경이 악화되자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이미 여러 업체가 실적 악화, 지역본부와의 불화 등으로 인해 지사장 교체 소문에 휩싸였고, 일부 업체는 후임자가 내정됐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 실적이 조금만 주춤해도 지사장 교체가 먼저 거론된다는 것은 그만큼 지사장이 중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CEO로서의 역할을 해내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다국적 기업 A사 대표는 “전세계 경기가 불안한 조짐을 보이면서 본사도 여유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현지 고객영업과 관련된 것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능은 중앙(본사)으로 집중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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