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국가 미래 바꾼다] 기술 교과서를 다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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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다 알아요. 재봉틀, 뭐에 쓰죠?’

2005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한 ‘실과(기술·가정) 교육과정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실과 교과 내용 중 컴퓨터, 용돈, 재봉틀 관련 단원들이 덜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는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학생들이 재빨리 적응하고 있는 반면에 교과서의 내용은 이를 다 반영하지 못해 실제 생활과 괴리를 일으킨다. 재봉틀은 학생들의 실생활과 거리가 멀고 거의 활용이 안 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한쪽에선 학생들의 변화 속도를 못 따라가고, 다른 한쪽에선 학생들의 생활과 유리된 우리 기술 교육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기술이 사회와 문화 전반에 스며든 현대 사회를 이끌 ‘기술 소양인’을 기르기 위해선 기술 교과서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술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활용 능력은 현대를 살아가기 위한 기본 교양이기 때문이다. 세세한 공학 ‘지식’의 전달에 치중하는 기존 기술 교육을 창의적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

◇재미없는 기술 교과서=현대 생활과 가장 밀접한 것이 이동통신 기술. 학생들이 24시간 끼고 사는 것이 휴대폰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기술 교과서엔 이동통신 기술에 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최운묵 염창중학교 교사는 “기술 교과서가 현실을 반영하려면 이동통신의 원리나 통신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 생활과 직결된 기술의 의미를 깨우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지금 기술 교과서는 공학적 내용을 주입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을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지도 않지만 다룬다 해도 휴대폰 안의 어떤 부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만 가르칠 것이란 얘기다.

자연히 학생들의 관심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학 지식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이해다. 하지만 전자 회로의 구성이나 내연기관의 2행정·4행정 사이클만 배울 뿐 전자나 자동차 기술에 대한 이해는 얻지 못한다는 것. 이공계 기피는 초·중등학교의 교실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실습은 딴 나라 얘기=수업이 내용 주입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기술 교육의 또 다른 축인 실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도 문제다. 실제 조작과 실습을 통해 기술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기술 교육의 목표지만 입시 중심의 교육 현장에서 실습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사고하고(minds on) 조작하는(hands on)’ 능력을 함께 기른다는 기술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애당초 어려운 일이다.

전국 기술교사들의 모임인 한국기술교육단체총연합회가 한국표준협회와 함께 개최한 ‘청소년 표준올림피아드’ 행사는 본선 진출 경쟁률이 3 대 1에 이르는 등 학생들의 기술 체험에 대한 열의는 높지만 이를 받아줄 공간이 많지 않다.

◇기술과 가정이 한 과목?=기술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현장 교사와 교수 등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재단도 기술 문화에 대한 이해와 문제 해결 능력 등에 초점을 맞춘 새 기술 교과서를 기획 중이다. 하지만 새 교과서만으로 기술 교육을 혁신하기엔 현 초·중등학교 교육 과정 자체의 벽이 너무 높다.

현장 교사들의 가장 큰 불만은 기술이 가정과 통합 교과로 운영된다는 것. 7차 교육과정부터 두 과목이 통합되면서 기술 과목의 주당 수업 시간은 절반으로 줄었다.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줄어 기술 교육은 더욱 이론 중심으로 흐르게 됐다. 한 교사가 기술과 가정을 모두 가르치는 일도 생겨 교육의 질은 더욱 떨어졌다. 그러나 기술 과목을 분리하는 것도, 수업 시간을 늘이는 것도 모두 전체 교육 과정의 근간을 흔들어야 하는 문제라 기술 교육 혁신의 길은 멀기만 한 상황이다. 이병욱 충남대 기술교육과 교수는 “발전하는 기술 세계를 교과서에 반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교육 과정의 수시 개정 등의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고 관련 협·단체 자료와 교재의 제작 및 사용을 활성화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했다.

한세희기자 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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