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지난 8월 5일부터 모든 정보화사업에 적용하고 있는 정부조달서비스(IT패키지서비스)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보화사업의 투명성·공정성 제고라는 정부의 당초 취지와는 달리, 소수 대기업의 독과점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정안전부가 모든 정보화사업에 IT패키지서비스를 적용하기 시작한 지난 8월 5일 이후 발주한 모든 사업을 100% 대기업 계열사가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관련 중소기업들은 IT패키지서비스 적용 철회나 시행의 취지에 맞게 제도를 보완해 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도 적용 후 대기업 ‘독식’=그동안 행안부에서 발주해온 정보화사업은 대부분 자체입찰로 이뤄져 왔으며 일부 조달청에 의뢰한 계약(2007년 기준 18.3%)도 기술평가는 발주처인 행안부 등에서 수행해왔다.
하지만 지난 8월 5일부터 본부, 소속기관 및 산하기관에서 발주하는 모든 정보화사업의 사업자 선정 일체를 조달청 조달서비스인 ‘IT패키지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지난 4월부터 고위 공무원이 구속되는 등 연이어 뇌물 사건이 터지면서 취해진 조치다.
이후 두 달여간 진행된 환경부, 농림수산식품부, 국토해양부, 질병관리본부 등의 IT사업을 삼성·LG 등 대기업 계열사가 독식했다. 특히 해당 사업이 대부분 20억원 미만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불만이 더욱 커지고 있다.
◇평가 시간 부족… 기업 브랜드가 점수 좌우(?)=대기업 독식이 이뤄지는 이유는 지나친 공정성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조달청의 IT패키지서비스는 산·학·연·관 등 해당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인력풀에서 평가위원을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인력풀은 1200명 선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조달청은 평가 전일 이들과 접촉, 심사위원을 구성한다. 이들 평가위원은 해당일에 1개 업체에 평균 30분가량의 프레젠테이션(PT)을 거쳐 평가점수를 부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평가 시간과 전문 지식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 브랜드 위주의 기업 평가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제안서 평가 시간 부족은 수요기관의 사업 방향이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부작용도 있다는 것이다.
◇기술보다 가격·제안서 작성 능력이 이점으로=기술평가 점수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입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많다. 최근 두 달간 한국정보사회진흥원에 수요 의뢰를 한 정부 IT사업 6건 중 2건이 가격에 의해 기술 평가 결과가 뒤집혔다.
중소업체의 한 관계자는 “해당 사업의 이해와 실제 구축 능력보다는 제안서 작성 능력이 오히려 평가 결과에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이 사업을 수주해도 대부분 중소업체가 재하도급을 맡게 된다”며 업계의 건전한 생태계를 교란하는 결과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에 ‘독(?)’… 잘 쓰면 ‘약(藥)’=하지만 중소기업들도 행안부가 당초 제도 도입의 원인을 제공했던 해당 공무원과 기업의 밀착관계를 해소하는 데는 조달청의 IT패키지서비스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요구도 제도의 폐지가 아니라, 보완이다. 제대로 된 평가 구조를 만들어 달라는 주장이다.
한국IT기업연합회 관계자는 “1차적으로 평가 시 제안서 제출 기업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평가의 객관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난달부터 1억원 이하 소규모 사업에 우선 적용하고 있는 조달청의 제안서 온라인 평가시스템 등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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