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국가 미래 바꾼다](2)산업·기술 박물관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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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시카고 하이드파크 안에는 시카고 시민의 자랑이자 미국인의 자긍심으로 자리 잡은 75년 전통의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이 있다. 1893년 열렸던 시카고 만국박람회장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은 3개 층, 5만6000㎡ 면적에 들어선 대부분의 전시품을 손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게 꾸며졌다. 미국 최초의 산업 계몽 국민교육센터를 표방하며 ‘만지며 배울 수 있는’ 박물관으로 사랑받고 있다.

 # 독일박물관은 명칭만 보면 국가 박물관이지만 내용 면에서는 과학기술 박물관이다. 독일인이 얼마나 과학과 기술을 중시하는지가 박물관 명칭에도 담겨 있다. 주요 전시품을 방문객이 실제로 사용해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과학적 원리를 자연스럽게 깨우쳐 주는 특징을 가졌다. 주요 선진국의 산업기술 박물관의 본보기가 된 ‘기술 박물관의 아버지’기도 하다.

 # 일본 미래과학관(MeSci)은 과학을 어렵게 전달하기보다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된 문화공간이다. 인류 생로병사의 기초가 되는 게놈을 평면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상과 그래픽, 게임 등을 이용해 전달함으로써 지적 흥미를 유발한다. 나노기술 선도국답게 다양한 나노 제품과 응용 모델을 전시해 실생활과 연결된 ‘나노 세계’의 속 모습을 보여준다.

 선진국은 기술과 과학 그 자체에서만 앞선 것이 아니라 ‘박물관 문화’에서도 우리보다 수십년 앞서 있다.

 산업혁명을 통해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이유도 있지만 그들은 박물관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기술을 알리고 거기에서 더 앞선 기술들을 만들어낸다. 산업 현장의 기술이 과거 기술의 결집체 또는 현재의 모습이라면 박물관이 보여주는 기술은 50년, 100년 뒤의 기술이다. 그만큼 기술발전의 에너지와 가능성이 응집된 것이 박물관이다.

 미국·독일·일본 등 기술 선진국은 세상을 바꿔놓을 기술이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지면 그것을 다른 국가는 물론이고 후세에 널리 알리고 자랑한다. 그래야 그것을 뛰어넘는 기술이 다시 나올 수 있다. 선진국에서 대도시는 대도시대로, 소도시는 소도시대로 특색과 규모에 맞는 산업·기술 박물관을 짓고 가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는 지식정보 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응집력과 기술로 세계시장을 재패했지만 아직 세계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산업·기술 박물관을 갖지 못했다. 단일 품목만으로도 반도체·디스플레이·조선이 세계 1위고 휴대폰과 자동차가 세계 2∼5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지만 이들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미래를 짚을 수 있는 전시관은 고작 해당 기업을 찾아가야만 가능한 실정이다.

 이렇게 제한되고 낙후된 ‘산업·기술 성과 전달 구조’를 갖고서는 국민을 미래 기술의 주도자로 키울 수 없다. 1초, 1분이 새로운 글로벌 IT·기술 혁명의 지휘국이 될 수 없다.

 박상이 한국산업기술재단 실장은 “산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박물관”이라며 “다른 나라가 볼 때 우리나라는 기술 수준이나 산업 규모에 비해 과학 기술 박물관 인프라가 너무 낙후돼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산업·기술 박물관을 만드는 것은 당대에 나타날 효과를 기대하고 벌이는 일이 아니다.

 박물관에서 지적인 자극을 받고 공부와 연구에 몰두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만들어내는 지적 생산기지인 것이다. 그 지적 생산은 곧 국가의 100년, 1000년 먹거리가 될 수 도 있다.

 산업·경제 구조가 지식 기반으로 빠르게 바뀌면서 산업과 기술을 인간의 생각과 연결시켜줄 박물관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물관은 직접 재화를 만들어내는 생산시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가능성이 응집된 ‘지식의 보고’기 때문이다.

 몇 품목, 몇 업종의 경쟁력이 세계 1위에 올라섰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제대로 된 산업·기술 박물관의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이진호기자 jholee@

◆산업기술 박물관이 가져올 ‘은총’

 왜, 선진국은 산업·기술 박물관에 매료될까.

 왜, 선진국의 거부들은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박물관에 평생을 얻어온 돈을 선뜻 쏟아붓는 걸까.

 답은 그들은 그 투자의 미래를 믿기 때문이다.

 산업·기술 박물관이 21세기 기술 문화의 척도로 부각되고 있다.

 차근차근 산업·기술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이공계 활성화 △과학기술 영재 양성 △기술과 문화 접목 △지방산업 발전의 네 가지 분야에 ‘특효’가 될 수 있다.

 ◇이공계 편견 ‘저리 가라’= 집에서 가깝게 가볼 수 있는 기술박물관은 그 가족 구성원의 ‘기술’에 대한 생각을 180도로 바꿔놓을 수 있다. 박물관의 기본적인 성격은 그 나라 기술과 산업 수준의 자긍심을 밑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의욕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도시 곳곳, 생활 저변에 산업·기술 박물관이 확산되면 지금 같은 이공계에 대한 냉대는 옛날 얘기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 영재 교육 ‘저절로’=박물관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저렴한 입장료로 둘러볼 수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국가 또는 지방, 학계와 연구계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소장품에 비해 접근성은 매우 뛰어나다. 그 때문에 산업·기술 박물관은 단순한 관람 이상으로 전 국민의 산업·기술 교육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 더구나 교육 차원에서는 이론에 국한된 경직된 내용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내용을 접하고 익힐 수 있는 공간이다. 과학기술 영재 양성을 꿈꾸는 우리로서는 박물관만큼 우선적 과제가 없다.

 ◇기술의 문화화, 문화와 산업의 접목=융합시대에 기술과 문화는 따로 가지 않는다. 그동안 박물관이 생활과는 다소 동떨어진 문화 공간이었다면 기술은 그것 자체로 이질적인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과 문화의 여러 분야가 단절 없이 서로 만나고 있다. 생활 발전의 생생한 내용을 담은 인류사 박물관과 기술 박물관이 조화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술이 음악·뮤지컬·미술 등 여러 전통 예술 분야와 접목되고 각종 문화적 가치가 공존할 수 있도록 산업·기술 박물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역 산업 발전에 ‘일익’=특색 있는 박물관 조성은 지방자치단체 모두의 절대 과제가 된 지 오래다. 새 정부도 지방산업 발전과 육성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그 해답은 찾기 힘들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둘씩 준비해 산업·기술 박물관을 지방에 세울 필요가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와는 또 다른 산업적 접근이 될 수 있다. 지역 사람들이 자긍심을 갖고, 존중하는 산업만이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다.

 초·중·고교생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지역 방문을 연계한다면 지역 산업·기술 박물관은 최고의 체험·방문 교육장으로 꾸며질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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