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위기에 빠진 팹리스’] (하)미래는 있다

Photo Image

‘기술력과 사람은 있다. 나무(팹리스)가 잘 자랄 수 있는 토양과 물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 팹리스회사들은 지난 10년간 세계적인 거함들과 경쟁하면서 실력을 키워왔다. 팹리스산업이 급성장하는 대만과 비교해도 기술력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여기에 휴대폰, 디스플레이, 가전, 영상보안감시 등 막강한 시스템 업체를 옆에 두고 있는 것도 강점이다. ‘빨리빨리’라는 국민성도 팹리스 산업을 이끌어가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지적이다.

 팹리스회사는 일부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 엠텍비젼의 영상처리·멀티미디어 칩은 3억대 이상의 휴대폰에 탑재됐다. 텔레칩스는 1999년 창업 이래 지난해까지 단 한 번의 마이너스 성장 없이 연평균 5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엘디티는 지난해 40%가 넘는 시장점유율로 PM OLED 구동칩에서 세계 1위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퀄컴, 브로드컴 등 미국의 일류 팹리스는 거대 공룡으로 군림한 지 오래며, 대만은 국가가 팹리스 육성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중국 역시 해외파 우수인력들이 조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따라서 우리 팹리스도 앞으로 10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원점에서 논의가 필요한 시기다.

 황기수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시스템회사가 잘나갈 때 부품을 육성해야 하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시스템-팹리스의 협력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스템회사가 필요한 기술·칩 확보를 위해 팹리스에 자금지원을 하면서 공생을 도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융합 추세 속에 대기업은 일일이 개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회준 카이스트 교수는 “대만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팹리스에 모든 지원을 다한다”면서 “우리도 국가가 나서 마케팅, 자금 등 산업육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단순히 포럼 수준의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업체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생태계를 꾸려나가자는 것이다.

 팹리스를 뒷받침하는 파운드리와 벤처캐피털(VC) 자금도 급선무로 꼽힌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사장은 “한국에는 팹리스와 전략적인 관계를 갖고 같이 커갈 전문 파운드리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벤처펀드에 붙어 있는 비정상적인 규제를 풀고, 자금이 활용될 수 있도록 연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자 자금은 물론이고 고급 인재를 끊임없이 끌어들이려면 확실한 성공신화가 필요하다. 팹리스로 출발해 중견 기업을 넘어 기업과 같은 수준에 오르는 기업이 등장해야 한다. 팹리스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이라고 해봤자 2000억원을 한참 밑돈다. 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팹리스가 빨리 등장해야 투자도 몰리고, 팹리스 벤처에 대한 인수합병(M&A) 시도도 활발해진다. 유망한 팹리스를 시스템 업체는 물론이고 정책 당국도 적극 밀어주는 풍토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국책과제 역시 실질적이고 우리 산업발전에 도움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황기수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정부는 외산 의존도가 높아 국산화효과가 높은 아이템을 국책과제로 밀어야 한다”면서 “교수들이 추천하는 비실용적 과제는 산업 발전에 별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설성인기자 siseol@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