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글로벌 플레이어] 글로벌 시장 진출시 주의사항

 러시아에서는 계약서에 서명만 받아서는 안 된다. 회사 직인을 날인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계약서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영국은 자존심이 강해 미국식 영어보다 영국식 영어로 제작된 카탈로그를 선호하며 거래 상대방의 영문 카탈로그에서 오자나 탈자, 잘못된 표현 등을 발견하면 그 기업의 능력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특이하게 대리점법과 대법원 판례를 통해 한 번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면 이 에이전트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그 계약은 계속 유효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멋모르고 현지 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우리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KOTRA아카데미가 해외 무역관 현장 보고를 토대로 펴낸 국제 협상 사례집은 우리 기업들이 해외 수출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금기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KOTRA아카데미 연수운영팀장은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으나 현지 정보 부족으로 거래의 첫 단추부터 끼우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외국인을 상대로 비즈니스 협상을 하고 계약을 체결하기까지는 온통 지뢰밭 길이므로 개인과 기업이 치명타를 입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지 사정과 습관을 잘 알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중국 상인들은 물품을 구입하러 출장 온 한국인에게 먼저 구입 희망 가격을 말하도록 유도해 그 금액을 기준으로 훨씬 높은 가격을 부르면서 협상을 주도해나가기 때문에 자신의 ‘패’를 잘 감추는 것이 필요하다.

 파키스탄은 보편적인 상거래 관행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경쟁업체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또는 덤핑을 통한 시장 질서 파괴 등으로 자신의 위치를 강화시키고 이렇게 확보한 시장 지배력을 무기로 자국에 진출하려는 외국 수출업체에 가격 인하를 강요하기도 한다.

 터키의 일부 바이어는 흔히 상담 도중에는 당장 구매를 결정할 것 같은 적극성을 보이다가 막상 구체적인 계약 체결 단계로 들어가면 태도가 돌변한다. 게다가 이들은 상담장에서 가격·품질·대금 결제 조건 등을 구두로 약속을 하지만 실제 계약서 작성 시점에 한 번 더 가격을 깎으려고 시도한다.

 케냐를 비롯한 동부 아프리카의 상권은 인도계가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원주민 상인과 달리 동종 업종의 인도계 상인들끼리 불법으로 담합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KOTRA 사례집은 또 ‘인도에서는 대량의 후속 주문 가능성을 비추고 최초 주문 때 무료 샘플 또는 시장 테스트용 저가 공급을 요청하는 바이어를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인도의 어떤 기업은 한국 기업이 낮은 가격에 납품한 생산라인 테스트용 물량의 샘플 구입가격을 가지고 동종 제품을 제조하는 중국 기업과의 가격 협상에 사용해 공급가격을 낮춘 후, 그 중국산의 저렴한 가격을 가지고 다시 우리 기업과의 가격 협상 때 처음 샘플 구입 가격보다 더 낮게 해줘야 거래가 가능하다면서 협상과 거래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고 간 적이 있다는 설명이다.

 중동의 자유무역항 두바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무역 실무자는 팔레스타인·인도 그리고 북아프리카인들이다. 이들이 운영하는 회사는 대개 사무실 하나와 직원 대여섯 명을 두고 있다. 이들 중에는 D/A 또는 D/P 대금 결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수입 물품이 도착하면 물품 하자를 비롯한 각종 트집을 잡아 인수를 거부하면서 가격 인하를 시도하는 바이어가 적지 않다.

 페루에서는 회사 설립과 폐쇄 절차가 간단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례를 주의해야 한다. 일본 바이어와 협상 및 계약 이행 때는 상대 회사의 제품 설계 및 생산·품질관리·출하 등 거의 모든 공정과 납품 기준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한 기업은 일본에서 수주한 금형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국내 업계의 관행에 따라 도면의 일부를 무시해도 제품 성능에 하자가 없다고 자체 판단해 일부를 수정, 제작했다. 그러나 일본 바이어 측은 발주한 제품 사양을 자의적으로 변경하는 회사를 신뢰할 수 없다면서 기존 발주 제품의 계약 취소는 물론이고 재발주의 가능성까지 없애버렸다.

 심규호기자 kh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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