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이 고맙다. 부모로서, 선배로서 고맙다. 사실 아이들에게 가장 부끄러운 일은 가르침을 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역할모델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됐다. 존경과 권위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적인 부를 일군 성공한 기업인은 ‘탈세’와 ‘불법’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최고의 과학자는 사기꾼으로 판명났다. 정치 지도자는 경멸의 대상이다. 초등학생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욕설을 하는 세상이다. 심지어 추기경이나 조계종 총무원장 같은 종교계의 정신적 지도자조차 수틀리면 험한 꼴을 당한다. 지난 10여년간 권위의 해체 시대가 질풍노도처럼 지난 탓이다. 덕분에 이 나라에는 영웅도 없고 아이들에게 ‘본받고 따르라’고 할 대상은 더욱 없다. 우리가 공유하고 물려주어야 할 사람에 대한 가치가 상실됐다. 하지만 베이징의 우리 선수들은 달랐다. 기억 속에 갇힌 채 화석이 돼 버린 ‘땀과 눈물의 노력’ ‘역경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정신력’ ’가족과 조국을 위해’ 같은 ‘잊혀진 가치’들을 되살려 놓고 있다.
열 네 살때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실격당한 수영 선수는 아픔을 뒤로 하고 하루 17㎞씩 물에서 훈련한 끝에 이번에는 금메달을 땄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도 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 덕”이라며 “집 한 칸 마련해드리는 것이 소원”이라는 유도선수는 매트에서 눈물을 흘렸다. 전치 6개월의 갈비뼈 부상을 입고서도 결승 무대에 섰고, 쥐가 나는 다리에 바늘을 찌르고, 넘어지면서도 바벨을 놓지 않은 선수들은 감동 그 자체다. 모두 비인기 종목이라는 설움과 소외에 질 수 없었던 젊은이들이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저들을 보라”고. 진정한 성취와 ‘가치’를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선수들이 고맙다.
#베이징의 우리 여자선수들이 고맙다. 남자로서 고맙다. 안방에서만 큰소리치는 것이 한국 남자들이다. 지구 최강의 경쟁력을 갖춘 것은 ‘대한민국 여자들’이다. 올림픽 한국 남자 메달리스트들은 대부분 체급이나 네트 혹은 레인으로 구분된 비접촉 경기에 강하다. 체구와 파워에서 월등한 차이를 보이는 접촉식 경기에서는 영 힘을 쓰지 못한다. 축구가 대표적이다. 유럽의 강팀을 만나면 주눅부터 든 모습을 보인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기 싸움에서 밀렸다”는 것이다. 여자선수들은 다르다. 농구나 핸드볼 대표팀처럼 오히려 투혼을 불사른다.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고 전력 역시 훨씬 강한 외국팀에게 위축은커녕 당당하게, 최후의 1초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아줌마의 힘’을 보여준 핸드볼은 최강 러시아와 맞붙어 경기 내내 지고 있다가 막판에 4∼5골을 연속 성공, 기어이 무승부를 이뤄냈다. 상대팀도 혀를 내둘렀다. 농구 역시 세계 랭킹 4위 브라질에 10여점 이상 뒤지다가 막판 집중력으로 연장에 돌입했고 기어이 승리했다. 신체조건과 영어 울렁증 핑계로 국제무대에서 위축되는 것은 한국 남자들이다. 신장 154㎝의 토종 프로골퍼 신지애가 브리티시오픈 우승 이후 어눌하지만 과감하게 영어 인터뷰를 시도하는 장면 역시 ‘대한민국 여자 경쟁력’의 상징이다. 세계 1, 2위를 달리는 초일류 글로벌 기업 삼성과 LG조차 여성 임원 비율은 1% 안팎이다. 새내기 직원 비율은 25∼30%에 이른다. 후진적이고 억압적이면서도 마초적이기까지 한 사회체제에서 강인하고, 당당하면서도 아름다움까지 보여주는 대한민국 여자선수들이 고맙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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