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텔레마케팅]"모든 전화영업, 불법으로 오해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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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마케팅이라는 분야는 ‘고용증대-생산증가-내수촉진’이라는 순환적 연결고리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적게는 30만명에서 많게는 100만명 가까운 사람이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초 잇따라 터진 개인정보 유출 파문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중소기업과 시간제 급여, 성과에 일희일비하는 계약직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있다. 개인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면 개인정보 거래가 음지로 파고들면서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 개인정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텔레마케팅 산업, 소비자가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현명한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위기의 텔레마케팅 산업 현실과 문제점, 해외의 성공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기업과 소비자, 산업이 유기적으로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본다.

 

 개인 정보 유출 사태 이후 텔레마케팅 산업계가 유탄을 맞았다. 개인정보를 활용한 영업의 한계가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대기업들은 고객들의 상담에만 응할 뿐 적극적인 전화 영업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모든 전화 영업이 불법으로 유출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것으로 간주되면서 사실상 아웃소싱 기업을 활용한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화 영업이 중단되자 심한 타격을 입은 곳은 가입자를 모으지 못하는 대기업이 아니었다. 불똥은 대부분의 계약직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는 텔레마케팅 업계로 튀었다. 진원지보다는 여진으로 인해 토대가 부실한 지역에 피해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텔레마케팅 업체들은 이번 사태가 산업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전화 영업 사실상 중단=지난 4월 23일 하나로텔레콤이 경찰 수사 발표 이후 사실상 텔레마케팅 업체를 통한 영업을 하지 못하고 지난 5월 8일 공식적으로 영업 중단을 발표했다. 경쟁사인 KT도 지난 5월 20일 공식적으로 전화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파워콤 역시 공식 발표는 아니더라도, 하나로텔레콤 사태 이후 전화로 모객을 하지 않고 있다. 국내 초고속통신업계 대표 주요 업체 모두가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영업(아웃바운드 콜)은 포기하고 스스로 찾아오는 고객의 전화만 받는 소극적인 자세로 전환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지역 유선사업자(SO)들도 눈치를 보며 은근슬쩍 전화기를 내려놨다.

 사태는 통신업계에 그치지 않았다. 가장 적극적으로 아웃바운드 영업을 했던 보험회사들도 자사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것마저 신중해졌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보험업계 텔레마케터는 “자동차 보험 등 기존에 직접적으로 영업에 동의한 가입자에 한해 영업을 할 뿐 외부 마케팅 업체를 통해 제3자 활용 동의를 받은 사항 등에 대해서는 가급적 영업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달째 개점 휴업=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사 소속의 회사만 이용할 뿐 외부 업체를 통한 영업을 사실상 중단했다. 인건비 구조상 아웃소싱이 불가피한 업체는 고객들을 응대하는 전화(인바운드 콜)에만 대응할 뿐이다.

 텔레마케팅 업체들은 과거에 비해 ‘반쪽 영업’만 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나마 보험·금융권 등과 계약을 맺은 업체들은 반쪽 영업을 하지만, 통신업계의 외주 업체들은 한 달이 넘게 개점 휴업 상태다. 텔레마케팅 업체인 라이브코어의 김화수 사장은 “5월에는 하나로텔레콤 측의 지원으로 직원들에게 절반 정도의 월급을 줬지만, 6월부터는 급여를 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나로텔레세일즈와 계약하고 일해온 일부 업체에서는 아웃바운드 콜 중단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직원들로부터 사직서를 받아 놓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한국 TM산업 어디로=이러한 상태라면 당분간 아웃바운드 영업은 힘들 전망이다.

 황규만 한국컨택센터협회 사무총장은 “상당수의 텔레마케팅 업체들이 영세해 몇 달 이상을 버티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텔레마케팅은 회사의 비용이 대부분 인건비로 들어가는 인력 사업으로 고정비용은 계속 들어간다. 영업이 중단되면 사실상 사업을 못 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로 안 그래도 부정적이었던 텔레마케팅 산업에 더욱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졌다. 모든 전화 영업이 불법으로 오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비단 아웃바운드 전화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바운드 사업도 위축이 불가피하다. 전화를 걸거나 받는 소비자가 전화 영업 자체에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전화 영업 시장이 위축될 것이 뻔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텔레마케팅 관련 제도마저 확립되지 않은 채 막연한 거부감만 커질 가능성도 있다. 애매한 규정으로 인해 양지에서 뿌리를 내린 텔레마케팅 업체들은 고사하고, 대신 기획부동산과 불법으로 확보한 개인정보를 통해 영업을 하는 영세 업체들이 난립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면서 수십만명의 고용창출과 함께 기업의 자유로운 마케팅 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TM 업체인 IMC텔레퍼포먼스의 김남국 사장은 “정보기술(IT) 발달로 텔레마케팅은 기업과 고객이 소통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현실적이고 명확한 제도를 마련해 산업 자체를 투명하게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귀띔했다.

◆TM 산업이란

 텔레마케팅(TM)은 말 그대로 전화 등을 통해 고객과 의사소통하는 일을 말한다. 전화가 보편화된 지난 1990년대 이후 기업들이 고객 응대를 위해 본격적으로 도입했으며 IT 발달로 지난 1999년 이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기업 대부분이 콜센터를 두기 시작하면서 산업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TM서비스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고객이 걸어온 전화를 받는 보통 ‘인바운드 서비스’와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아웃바운드’ 서비스다. 회사들의 고객 센터가 대표적인 인바운드 서비스다. 소비자가 보통 받는 보험, 초고속인터넷 가입전화 등은 아웃바운드에 해당된다. TM은 또 회사 내에 직원을 두고 하는 ‘인하우스 방식’과 외부 전문업체를 통하는 ‘아웃소싱 방식’으로 구분된다. 초기에는 인하우스 방식이 대부분이었지만, 기업들이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TM 전문업체를 많이 활용한다.

◆TM산업 현황

 텔레마케팅 산업에는 사실상 진입장벽이 없다. 방문판매법에 따라 정부에 신고만 하면 사업을 할 수 있다. 한국컨택센터협회에 따르면 지식경제부에 신고한 업체는 3만5000개에 이르며 60만∼80만명의 상담원이 종사하고 있다.

 산업 규모는 11조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신고를 하지 않고 영업하는 일시적인 TM업체까지 합하면 대략 100만명에 가까운 수가 TM 업무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했다.

 TM업체는 인바운드 서비스는 30대 초반, 아웃바운드는 40세 정도까지 취업이 가능하다. 대체로 TM업체들은 고졸 이상의 학력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취업난 속에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과 사회 재진출 내지 부업을 노리는 여성이 주로 활동한다.

 황규만 한국컨택센터협회 사무총장은 “텔레마케터 경험을 거쳐 타 직종으로 이직할 수 있는 첫 단추가 되는 경향이 많다”며 “최근 2∼3년간 기업의 고객 마케팅이 강화되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직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TM 산업은 전화뿐 아니라 IT를 활용한 종합 마케팅으로 변화하고 있다.

 김남국 IMC텔레퍼포먼스 사장은 “고객과의 대면 접촉이 중요해지면서, 고객관계관리(CRM)를 활용해 전화뿐만 아니라 e메일, 문자메시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팀장=김동석차장 dskim@etnews.co.kr, 김준배, 김규태, 황지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