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통신요금 포퓰리즘

이상하다. 그동안 정부가 주창해온 기업 자율경쟁에 의한 요금 인하 목소리가 갑자기 잠잠해졌다. 대신 공정위와 감사원, 방송통신위원회를 앞세운 압박카드가 선보이고 있다. 불공정 행위 조사 운운하다가 최대 91배까지 통신비 폭리를 취했다는 감사결과까지 내놓고 있다.

 이쯤되면 가히 전방위 공세라 할 만하다. 공정위와 감사원, 방통위가 누구인가. 그들이 나섰다면 이제 방향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통신 정책은 정부에 의해 철저히 주도돼 왔다. 구설수에 올랐던 2005년의 ‘통신요금 담합’ 건도 그렇고, 이번 감사원의 ‘살인적인 요금 폭리’ 건도 그렇다. 전자는 정통부의 행정지도 결과였으며, 후자는 요금정책에 의해 인가된 요금이었다. 정부도 이미 시인한 바 있다.

 중도하차하긴 했지만 이동전화 가입비 철폐, 기본요금 일괄 인하, 이동전화 착발신 양방향 과금제도 도입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이 현실성이 없는 데다 업체들의 반발도 심해지자 MVNO 도입, 결합판매 및 망내할인 활성화, USIM 잠금장치 해제 등 자율경쟁을 통한 요금 인하를 선언했다.

 그런 정부가 바뀌고 있다. 실효성도 별로 없는 저소득층 통신비 인하정책을 내놓는가 하면 불공정 요금담합이나 영업행위가 없었는지 실태 조사에 나서겠다는 발표가 동시에 나왔다. 곧이어 감사원은 통신요금 폭리 사례를 들이밀며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의사 표시다. 방통위는 감사원 지적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아예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멀찌감치 물러섰다. 그동안 통신요금 담합, 하나로텔레콤 인수합병(M&A) 인가 건에서 보여준 공정위와의 갈등은 먼 나라 얘기인 듯하다.

 그렇다고 통신과 방송의 과금체계를 다시 짜는, 통신의 정책과 규제 철학 전반을 바꾸겠다는 의미는 아닌 듯 하다. 감사원의 위세에 눌린 탓일 것이다. 실제로 방통위 내부에서도 감사원의 지적이 과금체계나 현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온 일반적인 상식을 근거로 한 상식적인 지적일 뿐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초당 과금이나 낙전 수입 운운은 특히 그렇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의 한 단면이다. 부처간 정책 조율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지 물가상승이나 유가상승 등으로 서민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요금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는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촛불 민심 무마용이다.

 이통사들은 그동안 망내할인, 패밀리요금제, 결합서비스, SMS, 저소득층 요금 감면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은 상황이다. 이 제도만으로도 올해 이통사들은 1조원 이상의 매출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가능한 한 통신요금은 내리는 게 맞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지원책은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정책당국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 산업 전반에 대한 조망을 담은 장기적인 정책적 로드맵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적 정책이라면 그래서 한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요금 인하 이후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미다. 적정 수준의 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당연히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설비투자 여력이 소진된다. 해외사업도 투자 축소로 인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차세대 먹을거리 산업으로 지칭되는 신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를 풀고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펴겠다고 하면서 규제와 통제를 강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추어리즘이 극에 달했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MB노믹스의 실체가 궁금해진다.

 박승정부장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