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융합 시대,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전자신문이 주관하는 ‘정보통신 미래모임(회장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은 지난 29일 서울 논현동 브이소사이어티에서 ‘IT 분야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1월 정기 토론회를 열고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큰 흐름으로 떠오른 기술 융합 시대에 대비해 이를 겨냥한 전략 수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국내에도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밖에 20명이 넘게 참여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중소기업의 IT활용 방안과 IT 세계화 전략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특히 다소 더디게 진행되는 국내 혁신기술의 융합 정책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국가를 포함해 각 사회 분야가 전략적으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주제 발표에 나선 손승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IT융합서비스부문 수석 단장은 “세계적으로 혁신적인 기술 융합이 이뤄지고 있는 시기에 우리나라 IT는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술 융합을 추진하고 수행해 나갈 맞춤형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정보통신부 해체가 기정사실화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체를 이끌 것인지를 놓고 부처 개편과 별도로 큰 방향에서는 기술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는 데 대해 동의하고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했다.
◇‘포스트’ 정통부 대책 시급=이희성 인텔코리아 사장은 “그동안 모든 정부 부처에서 IT를 다루어 왔다”라며 “이 때문에 IT정책에 대해 개별 부서와 정통부가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덧붙여 “만약 정통부가 해체된다면 이는 모든 부처에 IT기능이 흘러들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태명 교수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그는 “발전적 해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지금 논의하는 수준을 보면 정통부 기능이 각 부서에서 실제로 계승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받아쳤다. 이제호 성균관대 의대 교수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제치고 광 전송망 속도 세계 1위를 달리게 된 데는 중앙 정부의 통일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우리는 아직 정통부처럼 통일된 의사 결정체가 나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단계”라고 설명했다. 다시 정태명 교수는 “일본은 2007년부터 정보통신성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략적인 인재 양성론 필요=부처 개편과 별도로 우수한 IT 인력은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오병기 넥서브 대표는 “사회 각 분야가 자신만의 영역에 매몰돼 있다”며 “산업자원부는 정보화에 무관심하고 정보통신부는 기업활동에 대해 무지한데 이는 학교라고 예외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결국 정치든, 교육이든, 기술 융합 마인드를 가진 인재가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오 대표는 이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먼저 학교에서 맞춤형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 대표 의견에 대해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요즘 기업에서 대졸자를 현장에 투입하기까지 교육하는 비용이 평균 1000만원 정도라고 아우성”이라며 “기업에서 대졸자를 바로 현장에 투입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는 학생에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정보화 마인드를 기르기 위한 곳”이라며 “기업에 특화된 교육만 하면 빠르게 변하는 기술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양지연 변호사는 글로벌 기업에서 선호하는 인재상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양 변호사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결코 학위가 중요하지 않다”며 “오히려 얼마나 스스로 지적 재산을 창조해낼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고 말했다. 결국 창의적 인재가 국내에도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주제발표: IT분야 발전방안 -송승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IT융합서비스부문 수석단장
그동안 IT산업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주도해 왔다.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12.7%에 경제 성장 기여율은 41.2%에 이른다. 흑자 규모를 보면 이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지난해 IT산업 흑자는 543억달러였다. 전체 무역 흑자 규모가 161억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IT에서 벌어 적자 보는 분야를 메워준 셈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IT 산업은 몇 가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우선 생산 기술의 해외 이전이 지속되고 원천 기술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또 저출산, 고령화로 고급 인력 수급에도 빨간불이 들어온 지 오래다. 결정적으로 IT 발전 속도에 비해 사회 시스템의 진보 속도는 더디다. 주지하듯, 우리나라의 교육 경쟁력은 세계 40위 수준이고, 정부 행정효율은 31위, 기업지배구조는 34위에 머물러 있다.
내부적인 어려움 속에서 우리 IT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우선 IT활용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IT 기반의 융합기술을 창출해야 한다. 그동안 선진국 제품을 모방하는 데 그쳤던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산업을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중에서 융합IT를 창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IT에 BT, NT 등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미국은 나노기술을 기반으로 한 융합기술 전략을 2002년에 이미 수립했고, 일본도 2004년에 7대 신성장산업 집중지원을 위한 전략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부처별로 각 기술의 융합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적인 기술융합 추세에 맞춰 전자통신연구원은 즐겁고, 편리하고, 안전한 ‘휴먼 테크놀로지(human technology)’를 창조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 인력을 다수 확보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분야에 특화된 인재를 양성하고 핵심 원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인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패널발표 1-IT산업의 글로벌 전략-양지연 마이크로소프트 고문 변호사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크게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다른 기업이 개발하기 어려운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 내부적으로 지식재산권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제고돼야 한다. 다음으로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개발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은 기업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인 데 비해 나머지 조건인 ‘글로벌 기업과 연대’는 기업 외부적 활동에 의해 충족되는 부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글로벌 기업과 연대에 대해 그동안 잘못된 생각을 가졌다. 정부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의 R&D센터를 유치만 하면 자연히 기술 이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착각일 뿐이다. 글로벌 기업이 현지 정부의 도움으로 R&D센터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주된 목적은 자신의 지식재산권을 현지의 기업이나 정부에 넘겨주는 것이 아니다. 목적은 오로지 자기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뿐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아무리 많은 R&D센터를 유치한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기업의 핵심 기술이 현지에 이전되는 일은 거의 없다.
쉽게 생각해보자. 국내 많은 기업이 중국으로 진출하는데 그들의 목적 또한 기술 이전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생산 원가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중국에 공장을 짓는다. 우리의 지식재산권을 넘겨주기 위해 중국에 진출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만에 하나 일부 기술이 현지로 이전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기업의 핵심 기술이라기보다는 넘겨줘도 별로 상관이 없는 무가치한 기술일 뿐일 것이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연대해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거대한 거인과 맞서 싸울 생각만을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거대한 글로벌 기업과 국내의 일개 기업이 맞서 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몇 가지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과 연대하는 방법을 소개해 본다.
킹덤 언더 파이어는 국내 게임개발업체인 판타그램이 제작한 X박스용 게임이다. 이 게임은 출시되자마자 인기도 1위에 올라 판타그램이라는 회사를 일약 스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는 국내의 기술과 글로벌 기업의 유통전략이 결합하면서 시너지를 낸 좋은 사례다. 다음으로 안철수 연구소의 안티바이러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포어프런트(Forefront)와 결합해 세계시장에서 큰 신뢰도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전혀 진출 경험이 없는 제3의 시장을 들어가게 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와 합작했던 사실 하나만으로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블랙잭폰도 글로벌 기업을 잘 활용한 사례 중의 하나다. 삼성전자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다. 물론 이런 기업이 운용 소프트웨어(OS)를 만들어도 되겠지만 삼성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OS를 만들 시간을 차라리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 할애해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과 비즈니스를 공유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굳이 거인을 눕히려 하지 않아도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패널발표2- `중소기업의 IT 전략` 오병기 넥서브 대표
얼마 전 이명박 당선인은 중소기업에도 IT를 접목하면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당선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중소기업에 IT를 접목하려는 시도는 기존에도 꾸준하게 진행돼 왔다는 사실이다. 2004년 보고서를 보면 산업자원부는 2001년부터 3년간 전국 3만여개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IT전환 사업’을 추진했다. 여기에 총 739억원의 경비가 소요된 것으로 보고됐다. 정보통신부도 마찬가지다.
정통부는 전국의 영세기업 250만개 중 100만개에 1000억원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소기업 네트워크 사업’을 2002년부터 수행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지난 해까지 80만개 소기업이 지원을 받았다.
엄밀히 따지면 이 당선인은 지금까지의 성과를 먼저 얘기한 뒤 앞으로 추가적인 계획에 대해 말했어야 옳다. 그러나 이 당선인은 마치 중소기업에 IT를 접목하는 것이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것처럼 공언해 그동안 정통부와 산자부가 해 왔던 정보화 사업은 수천억원 예산만 낭비한 채 역사 속으로 묻힐 공산이 커졌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중소기업의 IT 전략은 바로 이 지점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 정부 들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기에 앞서 이전에는 왜 성과가 나지 않았었는지를 진지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정계, 학계, 산업계가 모여 허심탄회하게 과거의 사업들에 대해 살펴보고 무엇이 잘못돼 왔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외부에 있는 우리들도 여기에 동참해 중지를 모아야 한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안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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