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9일 전 세계 휴대폰 업계의 시선이 한꺼번에 미국에 쏠렸다. 올 한 해 최대 관심사였던 애플의 ‘아이폰’이 북미시장에 처음 출시되던 때 아이폰은 일주일 만에 100만대가 단숨에 팔려나갔다. 휴대폰 업계에 놀라움과 긴장을 주던 순간이었다. 아이폰이 던진 메시지는 무엇일까. PC와 MP3 시장에서 아성을 굳힌 애플이 휴대폰 시장까지 넘본다거나 잘하면 내년쯤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1%까지 잠식할 수 있다는 둥 단순한 점유율 경쟁구도의 변화는 아니다. 세계 시장의 바로미터인 북미 휴대폰 시장에서 이제 막 변화를 시작한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게 모두가 주목하는 대목이다.
◇진화하는 북미시장=아이폰이 시사하는 바는 향후 프리미엄 시장에서 새로운 기능과 편리한 사용자인터페이스(UI), 혁신적 디자인을 갖춘 스마트폰 경쟁이 특히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북미 시장에서 쿼티 자판 배열의 스마트폰이 큰 인기를 모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흐름인 셈이다. 실제로 북미 지역에서는 MP3 뮤직폰 시장이 올해 5919만대(33.9%)에서 오는 2010년이면 1억2600만대(63.1%) 수준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또 문자메시지·e메일·메신저 기능을 탑재하고 기존 PC 자판 배열을 그대로 채택한 쿼티폰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1800만대 규모였던 쿼티폰 수요가 오는 2011년께 2억9300만대로 전체 휴대폰 판매량의 22%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향후 프리미엄 휴대폰 시장은 음악으로 상징되는 ‘콘텐츠폰’, 쿼티폰으로 대표되는 ‘솔루션폰’ 등으로 뚜렷하게 진화해 나가는 한편, 시장 주도권을 놓고 한층 더 치열한 접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프리미엄 시장 주도권 선점=삼성전자·LG전자는 지난 3분기 각각 점유율 20.7%와 15%로 32.8%의 모토로라에 이어 2, 3위를 달리고 있다. 출하량(판매량) 외에 더욱 고무적인 것은 뮤직폰·쿼티폰·3G폰 등 이른바 프리미엄 시장에서 점점 더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선보인 슬림 바 타입의 스마트폰 ‘블랙잭’을 100만대 이상 팔아치웠다. 미국 브랜드 조사기관 ‘브랜드 키즈’가 6년 연속 삼성전자 휴대폰을 고객 충성도가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할 만큼 주류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얻은 덕분이다. 올해 들어서는 더욱 다양한 프리미엄 제품이 속속 히트폰 반열에 오르고 있다. 스프린트사를 통해 출시한 듀얼 페이스 ‘울트라 뮤직폰(일명 업스테이지)’는 벌써 80만대 가까이 판매됐고 뮤직 전용폰인 ‘주크’는 76만대 가량 팔려나갔다. 지난달에는 블랙잭의 후속 모델인 ‘블랙잭2’를 선보이며 내년도 시장을 벌써 예약하고 있다.
LG전자는 3G 시장에서 확고부동한 지위를 바탕으로 뮤직폰·쿼티폰 확실히 시장까지 넘볼 수 있다는 자신이다. 가트너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북미 지역에서 3G 서비스가 개통된뒤 올 1분기까지 현지 시장점유율 50%를 달성하며 지금까지 1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미국 최초의 HSDPA폰인 ‘LG-CU500’은 단일 모델로 최다 판매량인 120만대를 넘기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화상회의 기능을 지원하는 ‘LG-CU500v’ 모델과 푸시투토크 기능의 WCDMA폰 ‘LG-CU400’을 추가로 선보이는 등 적어도 3G 시장에서는 아성을 굳히는 분위기다. 또 지난해 10월 미국 시장에 출시한 쿼티 키보드 배열의 멀티미디어폰 ‘enV(LG-VX9900)’은 지금까지 50만대 넘게 판매됐다. 이미 LG전자는 미국 10대 히트 휴대폰 가운데 4종의 프리미엄 모델을 순위에 올려 노키아(3개)·모토로라(2개)를 제치고 가장 많은 히트작을 낸 제조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디자인·기술에 이어 문화를 장악하라=아이폰의 사례에서 보듯 지금 미국 휴대폰 시장에서 화두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이끄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제조사가 현지 밀착형 마케팅 프로그램을 열심히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삼성전자는 올해 미국 최대 자동차 경기 대회인 ‘나스카’를 후원했고 세계적인 팝스타 비욘세를 자사 휴대폰에 끌어들이는 등 굵직굵직한 현지 마케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LG전자도 ‘전 미국인 메시지 보내기 운동’이나 미국 전역의 ‘모바일 마케팅 투어’ 행사 등을 통해 현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전력하고 있다. 로버트 파시코프 브랜드키즈 회장은 “삼성 휴대폰이 6년 연속 소비자 충성도 최고 브랜드로 선정된 것은 급변하는 소비자의 취향과 끊임없이 상승하는 기대치를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이것이 최근 북미시장 효자폰
지난 3분기 말 현재 미국 시장에서 삼성전자·LG전자는 모토로라에 이어 각각 휴대폰 시장 점유율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적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가 가장 많다. 최근 들어 현지에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는 히트폰이 점점 더 많이 쏟아지고 있는 덕분이다. 특히 미국 시장의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스마트폰·뮤직폰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블랙잭 스마트폰의 인기를 이어가 올해는 더욱 진일보한 ‘블랙잭2’를 야심작으로 선보이고 있다. 슬림 바 타입 디자인의 스마트폰인 블랙잭은 쿼티 키보드 자판에 3.5세대 이동통신인 HSDPA를 지원하는 모델로 지금까지 100만대 이상 팔려나갔다. 신규 서비스에 가장 적극적인 스프린트를 통해서는 한층 파격적인 시도가 전개되고 있다. 올해 큰 화제를 불러모았던 비욘세 마케팅의 성과물로 ‘B폰’이 등장했다. 비욘세가 직접 디자인에 참가해 뮤직폰 기능을 극대화한 제품으로 요즘 미국 젊은이에게 인기다. ‘업스테이지’는 휴대폰 앞·뒷면에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이른바 듀얼페이스 디자인의 울트라 뮤직폰이다.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뮤직폰으로는 T모바일향 ‘비트’와 버라이존향 ‘주크’다. 비트는 대용량 외장 메모리에 사용자 편리성을 크게 강화한 점이 특징이고 주크는 MP3플레이어 모양의 디자인을 채택한 점이 돋보인다.
LG전자는 지난해 7월 미국 시장에 처음 공급한 초콜릿폰이 벌써 370만대 이상 판매되면서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식지 않는 인기에 힘입어 올해는 ‘뉴초콜릿폰’과 ‘뮤지크’ ‘트랙스’ 3종의 전략 뮤직폰을 선보이며 시장을 본격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터치내비게이션 뮤직폰인 ‘비너스’를 앞세워 내년도 시장을 벌써 ‘찜’ 해놓은 상태다. 특히 뮤지크는 최근 경제주간인 비즈니스위크가 ‘아이폰과 경쟁할 만한 제품’이라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트랙스는 LG전자가 장악하고 있는 미국 3G 시장에서 또 다른 전략 모델로 ‘터치스크롤’ 기능에 4Gb에 달하는 외장 메모리가 강점이다. 지난해 50만대 이상 판매하며 인기를 끌었던 멀티미디어 ‘enV폰’에 이어 올해 쿼티 키패드 휴대폰으로 출시한 전략 제품은 ‘루머’와 지난달 버라이존을 통해 선보인 ‘보이저’다. 보이저는 지난달 포브스지 온라인판에서 ‘미국외 지역 소비자도 부러워할 만한 휴대폰’이라는 호평을 얻은 바 있다.
이 밖에 팬택계열도 지난 10월말 AT&T를 통해 3G 스마트폰인 ‘팬택 듀오’를 출시하며 북미 지역 휴대폰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서고 있다.
◆ 인터뷰-손대일 삼성 미국통신법인장
"물건 파는 것보다 트랜드 주도 역점"
“미국 휴대폰 시장은 당장 눈앞의 치열한 경쟁구도만 생각해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단순히 기능이나 디자인을 앞세운 제품보다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생활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제품을 보여줘야만 시장을 선도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미국 통신법인장인 손대일 상무는 북미 시장이 여타 지역과 확연히 다른 점으로 ‘라이프 스타일 창조’를 꼽았다. 외형상 북미 지역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 현지 토종기업인 모토로라와 선두업체인 노키아의 틈새에서 수많은 휴대폰 제조사가 지금도 전쟁을 방불케하는 격전을 펼치고 있는 이유다.
손 상무는 “우리가 지난해부터 뮤직폰·스마트폰 등 차세대 전략 모델을 내놓고 미국 신세대층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문화 아이콘을 만들기 위함”이라며 “많이 파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핵심 거점이다.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지난해보다 158%나 신장된 1억270만대 수준으로 대폭 늘어난 것은 미국 시장에서 고가형 스마트폰이 빠르게 확산된 이유가 크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선보인 ‘블랙잭’ 스마트폰을 100만대 이상 판매하며 빅히트 모델에 올려놓은 데 이어 최근에는 ‘블랙잭2’로 다시 한번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AT&T와이어리스에 공급한 뮤직폰 ‘싱크’도 신세대층의 호응에 힘입어 출시 1년 만에 3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삼성 휴대폰하면 스포츠·문화 이벤트와 인기 연예인을 떠올릴 만큼 문화 마케팅을 정착시켰다는 게 손 상무의 자랑이다.
그는 “최고 인기 스포츠 가운데 하나인 자동차경주 나스카를 후원하는 것이나 블록버스터 영화에 PPL 광고를 접목시키는 시도, 젊은이의 우상인 가수 비욘세와 손잡고 뮤직폰(B폰)을 출시한 것 모두 삼성 브랜드를 현지 젊은이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서게 만들었다”고 자신했다.
일반 소비자와 더불어 북미 시장에서는 통신사업자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다른 선진시장인 유럽에 비해 통신사업자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손 상무는 “혼자 (마케팅을) 해도 되지만 통신사업자와 함께 하면 그들과 관계도 강화될 뿐더러 그 효과도 배가된다”고 귀띔했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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