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 은사 한 분이 “너는 좀 포지티브한 회계를 해보라”고 권하셨다.
포지티브(Positive), 즉 긍정적인 회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들렸다. 그런데 회계는 재산유지, 내부통제, 원가절감 등 좀 네거티브한 관리가 많은 편이라서 별다른 아이디어 없이 지냈다.
우연한 기회에 기업체 연구소에서 연구개발에 관련된 회계관리를 접하게 됐는데 연구소는 전통적인 회계와 좀 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으로 제조활동에서는 1원이라도 원가절감을 하고자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전자에서 1년에 1억5000만대 정도의 휴대폰을 생산하니, 대당 1원만 원가를 낮춰도 년 1억5000만원의 이익이 생긴다.
연구개발에서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 연구개발투자의 13배나 되는 미국과 8배나 되는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그 배수만큼 연구개발에서의 효율성이 높아야 한다.
그런데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예산을 쥐어짜면 연구원들의 창의력이 극도로 위축된다. 비용은 절감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연구개발에서는 전통적인 원가관리 개념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회계관리가 필요하다.
결국, 나는 연구원들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회계관리가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이를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회계 (Creativity Accounting)’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기업에서 연구개발은 매우 독특한 활동이다. 연구개발이란 이제까지 그 기업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장의 일보다고 비정형적인 과업이며, 높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어 고도의 창의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아직 창의력을 증진하는 회계의 완전한 답을 찾지 못하였지만, 그 중의 한 원칙이 ‘연구개발성과 존중의 원칙’이다. 즉 연구개발예산을 편성하고 실시함에 있어서는 연구개발성과의 실현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구개발은 목적 지향적인 활동이다. 원가도 중요하지만, 성과의 실현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목적 지향적인 관리 개념이 무기 생산에 적용된다. 비행기의 속력을 0.1마하 높이기 위해 수조 원을 쓴다. 전쟁에서는 비행기의 작은 성능의 차이가 국가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신제품은 기업의 신무기이다. 신제품의 개발에 대한 지나친 지출 통제는 연구개발 활동을 구속하여 연구개발성과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결국 기업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창의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회계관리, 이는 연구개발관리의 키워드이다. 이제는 연구개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식자본사회에서는 판매, 제조관리에서도 창의력을 높이는 새로운 회계개념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조성표 경북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pcho@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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