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이슈 진단]일본 디지털 경기, 기로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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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를 견인해 오던 디지털 경기가 종막을 향해 치닫고 있다.’

매분기마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일본 전자업체들이 대다수인데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이유가 분명 있다. 세계 디지털 경기의 선행 지수이기도 한 일본에서 평판TV·휴대폰·PC 등 주요 디지털 제품 성장률이 일제히 둔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시장 확대에는 급브레이크가 걸렸고 업체 간 생존전략은 마지막 불을 뿜으려 하고 있다.

‘신 3종의 신기(神器)’라 불리는 평판TV·디지털카메라·DVD리코더 이후 경기를 견인할 만한 제품이 나오지 않는 것도 향후 저성장 회귀를 점치는 유력한 근거다. 관련업체나 시장조사 업체 조차도 휴대폰·PC 등은 부품 부족과 반도체 시황과의 역학 관계로 디지털 경기를 지탱할 만한 그릇은 되지 못한다며 저성장으로의 반전을 우려한다.



  #디지털 가전 시장 성장률 급속 둔화

‘가전 분야의 실적은 매출, 영업이익 모두 과거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1월 30일 열린 소니의 2006 회계연도 3분기 결산 발표에서 회사 측은 투자자들에게 이렇게 자랑했다. 가전 부문의 연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7%, 영업이익이 약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지역별로 보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매출이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비단 소니만이 아니다. 마쓰시타전기산업과 샤프도 역대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 호실적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물론 평판TV였다. 가전 양판점에서 평판TV를 사려는 소비자들의 모습은 호황 경기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 커다란 위험이 잠재돼 있다. 디지털 가전시장의 성장률이 급속하게 둔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이와총합연구소에 따르면 평판TV·디지털카메라·DVD리코더 등 3개 품목의 전년 대비 올 출하금액 성장률은 디지털카메라가 지난 2004년 26.2%를 고비로 2005년 0.8까지 급락했다. 2006년에는 교체 수요로 7.5%로 약간 반전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 하락하고 있다.

DVD리코더는 성장률이 둔화되고는 있지만 2009년까지는 두자릿 수 성장이 지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DVD플레이어를 포함하면 이미 2004년에 두자릿 수 성장은 끝났다.

가장 든든한 평판TV는 어떤가. 올해 출하대수는 8000만대, 출하금액은 10조엔을 상회할 전망이지만 성장의 정점은 코 앞에 다가왔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세계 LCD TV 시장은 올해 630억달러(약 7조5600억엔)에 달하지만 성장률은 지난해 91%에서 올해는 30%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또 시장 규모가 LCD TV의 약 3분의 1에 불과한 PDP TV는 지난해 32%에서 올해는 3%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른 조사 전문가들도 “TV 평균 단가는 2008년에 정점에 다달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 배경은 가격 하락이다. 소니 측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40인치 LCD TV가 업계 예상을 뛰어넘어 1년 사이 35%나 가격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평판TV 시장이 제품 수명의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숙기 시장에서는 업체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도태하는 기업들이 속출한다.

이미 방침 전환을 표명한 기업도 있다. 캐논과 공동으로 ‘표면전계디스플레이(SED)’ TV를 개발해 온 도시바는 올 1월 특허 문제를 표면에 내걸어 공동 출자를 포기했다. 파이어니어는 가격 하락을 이유로 올 실적을 하향 조정하며 PDP TV 공장 건설도 무기한 연기했다.

양호한 실적을 유지해 온 샤프도 현 상황에서 걱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가동한 세계 최대급 가메야마 제 2공장이 내년 중 풀 생산체제에 접어들지만 벌써부터 점유율 유지를 위해 10세대(가로 2.9m·세로 3.1m)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다. 가타야마 미키오 사장은 “우리는 이제 백지상태에서 다양한 사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쓰시타전기는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지 못한다면 생존 방법으로 라이벌 업체들의 점유율을 빼앗겠다는 전략을 세운 듯 하다. 올 1월 초 마쓰시타는 2009년 5월 가동을 목표로 2800억엔을 투입해 PDP 패널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이 공장은 한 장의 유리기판에서 42인치 10장, 50인치 8장까지를 얻어낼 수 있다. PDP 시장은 2009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지만 마쓰시타 측은 “적어도 2010년까지는 금액 기준으로 플러스 성장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회사의 세계 점유율이 33.6%인 점을 감안하면 스스로의 향후 전략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각 업체들의 생산 능력이 급증한다는 점도 큰 문제다. 샤프는 2000억엔을 들여 가메야마 제 2공장의 생산량을 늘린다. 마쓰시타도 올 7월 제 4공장이 가동되며 소니도 삼성전자와 8세대 LCD 공장을 올 가을 가동한다. 내년 올림픽을 조준해 한국과 대만업체들도 생산량을 늘린다. 결국 올 가을 이후부터는 공급량이 급증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밖에 오리온·후나이전기 등 신규 진출 기업들과 가격 경쟁도 시장 악화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PC 역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신 OS인 ‘윈도 비스타’ 효과를 기대하지만 이것만으로 시장을 견인하기는 무리라는 분석이다. 전 세계 보급률도 이미 60%에 가까워져 더 이상의 보급은 어려운 상황이다.

휴대폰의 경우 일본 국민의 4명 중 3명이 소유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수요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번호이동성제도에 의한 신규 수요도 현재 시장 전체의 1% 정도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 3종의 신기 이후 새로운 주역이 나타나지 않는 현실에서 생존방법은 고정비 절감 밖에 없는데 이미 슬림화를 추진해 온 일본업체들의 선택은 사업 철수나 합종연횡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내다봤다.

명승욱기자@전자신문, swmay@

◆포스트 신 3종의 신기를 찾아라

 ‘포스트 신 3종의 신기를 찾아라.’

평판TV·디지털카메라·DVD리코더 등으로 경기 침체를 벗어난 일본 전자업계가 새로운 성장동력 찾기에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 폭발적인 수요를 일으킬만한 제품은 눈에 띄지 않는다.

포화상태로 접어든 PC와 휴대폰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해 새로이 등장한 휴대이동방송인 ‘원세그’조차 비싼 생산 원가를 감안하면 디지털 경기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도체도 D램이나 플래시메모리 모두 윈도 비스타 수요를 노린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속락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시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다이와총합연구소의 미우라 가즈하루 애널리스트는 “이전의 컬러TV·VCR 등은 완전 새로운 제품 개발로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면서 “현재의 디지털 가전기기들은 기존 제품의 대체품에 불과하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의 세계 전자산업 추이를 보면 PC에 이어 휴대폰, 그 다음으로 평판TV 등 5년 후를 견인할 제품들이 지속적으로 출현했다. 이에 따라 부품업체들의 설비투자도 이어졌다.

일본 산업계는 디지털 경기 이후의 새로운 버팀목이 보이지 않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걱정한다. 게다가 디지털 경기의 침체기 도래로 인한 설비투자금 회수를 감안하면 눈 앞이 깜깜해진다고 지적한다.

산와경제연구소는 ‘최대 실적 경신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현 시점에서 일본 업계의 고민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디지털 가전 선두주자인 일본 업체들의 단순한 엄살로 보기는 어려다’고 분석했다.

일부 경제 분석가들은 ‘일본발 디지털 경기의 위기는 70·80년대 불황기에서 조차 재편작업이 이뤄지지 않던 전자업계의 새판짜기를 알리는 서막일지 모른다’고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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