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호적 전산화를 추진하면서 성씨에 두음법칙을 일괄적용, 같은 사람인데도 실생활과 주민등록, 여권 등에서 성씨가 달라 각종 민원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이와 관련 민원을 해결하기 보다는 문제를 덮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대법원은 최근 호적 전산화 이후 두음법칙이 적용돼 논란이 된 성씨의 경우 법적 절차(비송)를 통해 성씨 표기를 바꿀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각 지방법원에서 문의해 올 경우 성씨 민원을 해결해주지 말라는 사실상의 지침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23일 성씨 두음법칙 호적정정 신청 결과에 따르면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1월만 해도 두음법칙 호적을 정정해주다 불과 2개월만에 기각하는 전혀 엇갈린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 <본지 2월14일 1면 참조>
서산지원은 1월 초 접수한 류정모, 류정현씨가 호적상 ‘유’씨로 표기된 성씨를 ‘류’씨로 정정해달라는 호적정정 신청에 대해서는 정정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 3월에는 류정곤씨를 비롯한 류정남·류정식·류제창·류병국 등 4명의 정정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1월에 접수한 류정모, 류정현와 3월에 접수한 류정곤 씨는 사촌 형제다.
불과 2개월만에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서산지원 측은 2개월 만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판사들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이라며 자세한 이유를 언급하는 것을 회피했다. 또 민원인에게는 “상급법원 회의에서 두음법칙 성씨 정정은 (문제의 소지가 많아) 정정 허가를 내주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고 3월 이후부터는 기각 판정이 내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지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산·청주·부산·전주 지원에서도 성씨 관련 호적정정 신청이 들어갔으나, 모두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산과 청주 등 각 지법 호적계 관계자는 “비송 절차의 경우, 대법원의 견해를 많이 참조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대법원이 두음법칙을 적용한 호적예규를 지키는 것이 맞다는 견해를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어 일선 지법에서는 호적 정정 판결을 내리기가 불가능하며 사실상 1건도 정정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류정곤 씨는 “호적까지 서울에서 고향인 서산으로 옮기고 호적 정정허가서를 냈지만 3월 이후 접수했다는 이유로 호적을 정정하지 못했다”면서 “주민등록·여권·은행 등 각종 공문 서류의 성씨가 달라 경제적·시간적·정신적 부담은 더 커지고 있지만, 상급법원 행정처에서의 문제 해결 노력은 부족해 보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월권행위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호적과는 “비송절차를 통해 호적 정정 신청을 낼 수 있으며 적어도 대법원 호적과에서는 각 지원에 호적 정정과 관련 지침을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자세한 것은 공보관한테 문의해라”고 말했다. 대법원 공보과는 오히려 “호적에 관한 사항은 호적과에서 문의해보는 것이 맞다”고 대답을 회피했다.
대법원은 지난 2002년 호적 전산화를 추진하면서 성씨에 두음법칙을 일괄적용, 같은 사람인데도 실생활과 주민등록, 여권 등에서 ‘류’와 ‘유’씨 혹은 ‘라’씨와 ‘나’씨, ‘리’와 ‘이’씨 등이 혼용돼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해 대전지법은 두음법칙을 적용토록 한 호적예규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안수민 기자 smahn@etnews.co.kr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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