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2부-일·유럽 로봇현장을 가다: 일본편①오사카 로보시티

 <편집자 주>일본의 로봇산업동향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 로봇업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벤치마킹 대상이다. 지난 90년대 후반 소니가 VCR 부품으로 강아지 로봇을 만든 ‘아이보 혁명’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지능형 로봇붐은 애당초 생겨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요즘 일본이 꿈꾸는 로봇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현지 전문가들을 찾아가 직접 들어봤다.

 

 오사카는 일본의 관서지역을 대표하는 도시다. 에도시대부터 일본 물류의 집산지였던 오사카는 권력 중심이 관동의 도쿄로 건너간 후에도 상인 특유의 실용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을 바탕으로 일본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기풍에 따라 일본을 대표하는 미쓰이·미쓰비시·산요 등 수많은 기업들이 오사카에서 탄생했으며 2만여개의 중소 제조업체들이 지역내 산재해 있다.

 그러나 오사카의 경제는 지난 90년대 이후 장기불황이 이어지면서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오사카 시당국은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성장테마로 서비스 로봇을 점찍었다. 우선 오사카는 지역내 로봇 연구소와 대학, 기업체, 부품업체 등 로봇산업의 토대가 튼튼하다. 또 일본사회의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서비스로봇 주제를 선점해야 한다는 시당국의 정책적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에 따라 지난 2004년 5월 지역내 로봇관련 기업과 연구소들이 모여서 로봇개발 네트워크인 루보(ROOBo)가 발족됐다. 현재 루보에 가입한 회사는 240개. 로봇부품과 디자인, 설계, 제조, 콘텐츠 등 다양한 업종이 가입되어 지역내 로봇회사가 신형 로봇을 개발할 때 효율성을 크게 높인다. 기자가 오사카를 방문한 날에도 루보의 주도로 한 로봇벤처기업이 도로청소를 하는 실외용 청소로봇을 세계최초로 상용화했다는 뉴스가 크게 보도됐다. 오사카를 세계 로봇개발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거미줄처럼 엮어놓은 기업간 네트워크가 점차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오사카시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로봇 프로젝트는 ‘로보시티 코어’(Robo City CoRE) 사업이다. 오사카 도심에서 마지막 금싸라기땅인 오사카역 북측의 화물터미널 부지(24ha)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일부 블록에 기업들의 로봇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복합문화공간을 짓자는 계획이다. 로보시티가 완공되는 오는 2011년이면 오사카 역사에서 3분만 걸어나가면 시민 누구나 최신 로봇기술을 이용한 생활상을 체험하고 각종 로봇이벤트와 로봇쇼핑까지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로봇타운’이 생겨난다.

 로봇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현지에 입주한 로봇기업들의 연구개발에 소중한 자료로 활용된다. 서비스 로봇산업의 육성을 위해 소비자와 기업체를 연결하는 허브를 만드는 것. 로보시티 사업의 궁극적인 전략적 목표다. 얼핏 오사카의 로보시티 사업은 우리나라 부천시의 로봇파크와 산자부가 추진하는 로봇테마공원 등과 흡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땅값이 제일 비싼 대도시의 번화가에 로봇문화와 연구기능을 하나로 묶는 복합공간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오사카 특유의 상인적 도전정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크게 장사를 하려면 규모는 작아도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에 점포를 잡아야 한다는 경험 논리에 충실한 선택이다. 국내 지자체들이 앞다퉈 추진하는 로봇 클러스터사업이 대부분 땅값이나 임대료가 싼 변두리 지역에 몰리는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서울역 뒤편의 노른자위 땅에다 로봇체험관이나 로봇 인큐베이션센터를 지을 수 있을까. 지난 2001년 로봇시티 코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했던 오사카 대학의 미노루 아사다 교수는 요즘 한국도 로봇복합문화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하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대중들이 최신 로봇기술을 접하는 로봇문화공간은 가능하면 도심지나 교통요지에 있어야 성공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충고했다.

 오사카 시당국은 지난해 로보시티의 시공사를 선정했지만 아직도 세부설계와 컨셉트를 논의하는 중이다. 이러한 일본 지자체의 로봇산업 육성책을 보면 우선 저지르고 보는 우리나라의 경우에 비해 지나치게 신중하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심사숙고 끝에 내리는 그들의 결정은 여전히 한국 로봇업계가 관심을 갖고 주시할 이유가 충분하다.

 

◆오사카에서 만난 데즈카 오사무.

오사카시가 일본의 여타 지역에 비해서 로봇에 대한 열정과 애착이 유별난 이유의 하나는 걸작만화 아톰을 만든 데즈카 오사무가 바로 이곳 출신이기 때문이다.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는 1928년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1951년 바로 이곳 오사카 의대를 졸업한 뒤 만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남긴 수많은 만화 캐릭터들은 패전으로 찌든 일본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 특히 일본 로봇산업에 끼친 아톰의 문화적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두 발로 걷는 아시모, 로봇 강아지 아이보 등 일본이 자랑하는 지능형 로봇도 엄밀히 따지면 만화 아톰에 나온 로봇 캐릭터들의 재현에 불과하다. 이 곳 사람들에게 왜 로봇하면 오사카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데즈카 오사무가 여기 출신이지 않냐며 자랑스레 답한다. 오사카의 로봇산업에서 데즈카 오사무가 차지하는 정신적 무게가 얼마나 큰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오사카는 지금 아톰(로봇산업)을 통해서 도쿄에 뺏긴 일본 경제수도의 영광을 되찾기를 간절히 꿈꾸고 있다.

◆인터뷰-오사카대 아사다 미노루 교수 

 오사카 로봇산업의 현황을 듣기 위해 여러 번 전철을 갈아타고 오사카 대학으로 향했다. 만나기로 약속한 상대는 이 대학 로봇공학과의 아사다 미노루 교수(54). 그는 지난 2001년부터 지역 로봇산업육성을 위해서 연구소와 기업체를 연계하는 로봇클러스터 구성을 제안했고 결국 로봇문화공간인 로보시티 코어 사업까지 성사시켰다.

 또 오사카시가 주도하는 세계 로봇축구대회인 로보컵 위원장을 맡는 등 이 지역의 로봇산업정책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사다 교수는 로봇문화와 연구개발을 묶는 로보시티 코어를 처음 구상한 배경을 묻자 오사카 출신의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이야기를 불쑥 꺼냈다.

  “데즈카 오사무는 철완 아톰으로 당대 최고의 로봇에 대한 비전을 보여줬습니다. 이젠 후배인 우리 세대가 아톰을 넘어선 새로운 로봇상을 제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톰을 능가하는 21세기형 로봇 모델을 재정립하겠다는 그의 포부는 야심만만했다. 아사다 교수는 서비스 로봇시장을 조기에 창출하려면 로봇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요즘 로봇회사들은 마을 전체를 자동화한 유비쿼터스 로봇시스템을 구상하는데 대다수 사람은 인간형 로봇이 시중을 드는 영화 속 장면만 상상한다는 것. 그는 “소비자와 제조사의 간격을 줄이려면 로봇제품의 체험, 교육, 연구작업이 어우러진 로보시티와 같은 복합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사다 교수는 오사카 로봇개발네트워크인 루보가 형성된 이후 많은 중소기업들이 스스로 로봇업체임을 새로이 자각하면서 지역내 로봇사업에 큰 활력소로 작용하게 됐다고 말한다. 또 차세대 로봇산업에 대한 투자가 수익성이 낮다는 일부 비판적 시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최근 오사카 대학의 이시구로 히로시 교수가 개발한 인간형 로봇 ‘리플리’에 들어간 인공피부는 병원에서 화상치료용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기초 로봇연구에서 파생된 기술이 스핀오프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한 사례입니다.” 오사카 시당국의 적극적인 로봇지원정책에 대해서도 큰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자체가 금싸라기 같은 도심지땅을 로봇산업을 위해서 선뜻 내놓은 사례는 아마도 처음일 겁니다. 로봇산업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참 어려운 일이죠” 아사다 교수는 애향심이 강한 오사카 토박이답게 한국에 로봇테마공원이 생기면 일본(오사카?)의 로봇콘텐츠도 제공하고 싶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오사카(일본)=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공동기획 : 전자부품연구원(K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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