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혁신’이다. IT기업을 포함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혁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변하면 살고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게 경영의 기본 정석처럼 굳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실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루가 멀게 수 많은 혁신 기법, 혁신 경영 사례, 선진 혁신 경영론 등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각론’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아주그룹 김재우 부회장(63)은 자칭 타칭 ‘기업 혁신의 전도사’다.
김 부회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론이 아닌 실증으로 기업 혁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의 혁신론은 ‘IT’와 맞닿아 있다. IT를 빼놓고는 혁신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건자재·자동차가 주력인 전통 제조기업 CEO지만 오히려 IT기업보다 더 IT에 친숙한 ‘디지털 예찬론자’다. 벽산 시절부터 IT를 기반한 혁신 전도사로 숨가쁘게 뛰어온 지 꼭 10년을 맞는다.
“기업 경영은 한 마디로 ‘3P(프로덕트·프로세스·피플)’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업은 ‘상품(프로덕트)’만 잘 만들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업무 과정(프로세스)’과 ‘사람(피플)’이 경쟁력인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프로세스는 IT로 무장하지 않고는 결코 개선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IT를 모르고는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기업 환경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변수가 바로 IT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속도 경영’의 출발점도 따지고 보면 바로 IT입니다.”
김 부회장 말에 힘이 실리는 것은 이를 실현해 보였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첫 직장이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과 입사 동기다. 초대 삼성 런던지점장을 지냈으며 당시 삼성물산 한 해 매출에 육박하는 1억달러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며 ‘삼성물산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다. 삼성물산·삼성중공업 등 28년 동안 삼성에 몸담은 김 부회장은 98년 벼랑끝에 몰린 벽산의 ‘구원 투수’로 영입돼 ‘부실 덩어리’를 ‘알짜 기업’으로 회생시켰다.
“벽산 CEO로 갈 때만 해도 기업 이해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사업 자체도 생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분야에 경험이 전무하고 지식이 없다고 해서 경영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를 올바로 보고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아 한 곳에 집중하면 길이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사업 효율성을 목표로 프로세스를 개선했고 이 과정에서 낙후한 전산 분야를 대대적으로 뜯어 고쳤다”며 “투자가 힘든 상황이었지만 IT 부문만큼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예상보다 벽산은 빨리 회생했고 회생 후에도 지속 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지난 2005년 말부터 아주그룹 부회장으로 아주산업·아주레미콘 등 건자재 분야를 전담하며 새로운 아주그룹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혁신팀을 구성하고 선진 IT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접목 중이며 지식 경영에 관심이 높은 문규영 회장과 호흡을 맞추며 제2의 아주그룹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아주그룹은 레미콘·아스콘 등 건자재 전문업체로 45년 동안 쌓아온 신용과 품질·기술력·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기업입니다. 최근에는 금융과 자동차 부문을 강화하면서 그룹 위상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는 불과 2년이지만 아주그룹에도 벌써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혁신을 모토로 이전 경영자와 180도로 다른 경영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는 삼성물산·삼성중공업·벽산을 거치면서 쌓아 온 나름의 확고한 경영 철학도 한 몫 했다.
“경영의 정답은 없습니다. 물론 기업마다 원하는 경영자 상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경영자는 목표와 비전을 보여 주어야 하며 항상 미래를 봐야 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착안대국(着眼大局), 착수소국 (着手小局)’이라는 좌우명에도 이런 뜻이 그대로 배어 있다. 바둑에서 자주 쓰는 이 말은 대국적으로 생각하고 멀리 보되 실행은 한 수, 한 수 집중해야 비로소 승리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혁신이란 결국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게 필수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유연해야 합니다. 사람은 물론 조직이 경직되면 모든 게 사상누각입니다. 경영자는 위에서 아래까지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어떤 비판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새벽 5시면 정확하게 눈이 떠지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인 김 부회장은 대부분의 아이디어를 책과 신문에서 얻는다. 200여회가 넘는 강연에서 즐겨 인용하는 명언이나 경구·사자성어 등은 모두 책에서 건진 보배들이다. 신문에서는 주로 인터뷰 기사를 유심히 본다. 자기가 직접 만날 수 없는 석학·전문가 등과 간접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환갑을 넘긴 그는 인생 후배들에게도 할 말이 많다. 이들에게 잊지 않고 들려주는 게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들려준 “점을 이어라(connecting the dots)”이다.
“미래는 항상 불확실하고 불투명합니다. 하지만 과거는 현재와 이어지고 현재는 바로 미래의 가능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골프에 비유하면 공의 방향에 신경쓰지 않더라도 자세만 바르면 제대로 날아가게 돼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이 있는 곳을 향해 바른 자세로 달려가면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자신도 모르게 도달해 있습니다. 그게 바로 기업 경영일뿐 아니라 인생의 순리입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