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유통시장이 내년부터 무한경쟁 시대로 복귀한다. 과열경쟁을 막기 위해 99년 의무약정을 금지한 보조금 규제가 도입된 지 9년 만이다. 완전 자율경쟁에 앞서 4월께에는 일부 휴대폰에 추가 보조금을 제공하는 기회도 열린다. 3세대 이동통신인 WCDMA/HSDPA 휴대폰의 범용가입자식별모듈(USIM)을 개방하는 문제도 유통시장 지각변동에 메가톤급 영향을 미칠 변수다. 단말기 유통 주도권을 사업자가 아닌 제조업체가 갖는 ‘오픈마켓’이 등장하게 돼 이동전화 유통 시장 전반에 격변을 일으킬 전망이다.
◇의무약정제와 보조금 부활=4월에는 부분적인 보조금 규제완화 조치가 시행된다. 사업자가 특정 휴대폰에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고 기존처럼 정해진 금액이 아니라 일정 범위에서 보조금을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사업자 간 가입자 유치 경쟁이 불붙는 것을 전제한다면 4월 이후 합법적인 공짜폰이 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조금이 일몰하는 내년 3월 이후에는 사업자 간 경쟁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의무약정제가 부활할 전망이다. 97∼98년 보조금 규제가 없던 시절, 무한경쟁을 펼치던 사업자가 가입자 유치를 위해 사용하던 방식으로 보조금을 이용해 가입자의 이탈을 방지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기기변경 가입자에게 주는 혜택도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시장경쟁이 신규 가입자 유치에 집중될 공산이 높기 때문에 ‘잡은 고기에는 떡밥을 주지 않는다’는 법칙이 휴대폰 유통시장에서 더욱 일반화될 공산이 높다. 정부의 고민도 보조금 일몰 후 소비자 보호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통부의 관계자는 “일몰 후에는 사업자 자율에 따라 여러 가지 보조금 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도한 약정으로 인한 위약금 문제, 이용자 차별 등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채널의 다양화=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는 유통 채널도 다변화된다. 하나로텔레콤이 3G 휴대폰 재판매 사업에 진출하는가 하면 KT가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등과 자회사 KTF의 이동전화를 묶은 결합상품을 내놓는다. 기존 이통사 대리점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휴대폰을 구매하고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다. KT는 결합상품 판매를 강화하기 위해 소비자 접점인 ‘다락’이라는 유통점도 확대 중이다.
이통사와 제조사의 전략적 밀착도 더욱 확대될 공산이 높다. 이통사가 어떤 휴대폰에 보조금을 많이 제공하느냐에 따라 판매실적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SK텔레콤-모토로라, KTF-KTFT 외에도 새로운 밀착관계가 등장할 공산이 높다. 제조사들의 장려금 부담도 늘어날 수 있다. 무한경쟁이 격화되면 이통사 보조금뿐만 아니라 제조사의 장려금 경쟁도 강화될 개연성이 높다.
◇오픈마켓 등장(?)=KTF는 3G 가입자들이 자신의 USIM 하나만으로 어떤 3G폰이든 마음대로 바꿔 쓸 수 있도록 USIM의 단말제한 기능을 해제할 계획이다. USIM을 개방하면 휴대폰 유통시장도 변화의 회오리 바람을 겪을 전망이다. 2세대부터 SIM카드를 사용해온 유럽형이동전화(GSM) 지역은 휴대폰만을 판매하는 오픈마켓이 활성화됐다. 이통사에서 SIM카드만 사고, 휴대폰은 일반 판매점에서 사는 방식이다. 정부는 아직 USIM 정책을 확정하지 않았다. KTF가 내년부터 의무약정을 도입하고 먼저 USIM을 개방하면 SK텔레콤 등 경쟁사의 개방까지 압박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KTF의 관계자는 “글로벌 표준인 WCDMA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USIM을 개방해야 한다”며 “기존 KTF 대리점뿐만 아니라 제조사 유통망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훈기자@전자신문, taehun@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휴대폰 보조금 제도 변화 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