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청소부論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논어의 ‘안연’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제나라 ‘경공’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군군신신부부자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 또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재해석이 분분하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사회에서 가정에서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뜻이다. 지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왕의 남자’의 원전인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에 보면 주인공 공길이 임금에게 ‘군군신신부부자자’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다는 비아냥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창업 7년 만에 기업의 기초를 탄탄히 다진 대덕특구 김풍민 이머시스 사장도 이와 유사한 특유의 ‘청소부론’을 강변한다. 청소는 청소부에 맡기라는 것이다. 청소업무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이 직접 회사 환경을 위한답시고 직접 마대자루를 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보기 좋기는 하지만 생산성에 비춰 볼 때 왜 고급인력이 청소를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밖에 나가 한푼이라도 더 벌어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만간 코스닥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인정보통신의 KAIST 출신 권오진 사장은 창업 당시 대표직을 수락할 때 ‘CEO가 R&D까지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CEO가 R&D에 매달리다 보면 기술개발이야 진도가 나갈지는 몰라도 회사 전체 경영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고 한다.

 대덕특구 내에도 출연연과 기업 CEO 가운데 ‘방안 퉁수’들이 적지 않다. 그냥 앉아서 ‘집안일’이나 하며 6년간이나 허송세월해 정체상태를 보인 곳도 있었다. 남들 뛸 때 안 되면 걷기라도 해야 하는데 일부 CEO는 여름만 되면 휴가를 가장 먼저 가 직원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올해는 CEO를 새로 뽑는 기관들이 많다. 대부분 연임을 원한다. 연임론에는 동의하지만 CEO는 집안의 큰 그림을 그려 정리가 되면 밖에 나가 제발 ‘돈’ 따올 궁리부터 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3년 만에 예산이 3배 늘어난 한국한의학연구원처럼.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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