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분야는 지난 세기 로봇기술의 진보를 이끌던 주요 원동력이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전장에서 사람 대신 기계병사가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군대에 다녀온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던 소망은 로봇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안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한 장성이 미 국방부의 로봇개발 책임자를 만난 자리에서 질문을 던졌다. “미국은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가졌는데 굳이 로봇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있는가.”
“물론이다. 우리는 국방분야에서 압도적인 리더십(Absolute Leadership)을 원한다.” 로봇은 초강대국 미국이 추구하는 21세기 군사패권의 핵심도구다.
요즘 미 육군은 전면적인 대변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라크전의 수렁에 발목이 잡혀 세계 각지의 분쟁에 대비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현재의 병력체계를 첨단기술과 기동성으로 극복하기 위함이다. 미 육군은 소수 병력으로 지구 반대편의 분쟁지역에서 신속한 승리를 거두는 해법으로 새로운 개념의 로봇 전투부대를 구성하기로 했다. 로봇전투부대는 통상 3000명 단위의 여단급으로 구성되며 ‘UA’(Unit of Action)로 불린다. 각 UA가 보유하는 전투로봇은 지상용 무인차량 200대, 무인정찰기 200대에 유인전투차량 800대가 추가로 배치된다.
로봇전투부대의 최대 장점은 육중한 탱크, 장갑차 등 수십 톤이 넘는 중장비가 애당초 없기 때문에 기동성이 뛰어나다는 것. 사람이 타지 않는 전투로봇은 덩치가 작기 때문에 수송기에 실려 4일(96시간) 내 세계 어디라도 투입될 수 있다. 전투로봇들은 전장에 도착한 즉시 육상과 공중으로 산개해서 반경 100㎞ 이내 적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무인로켓, 곡사포 등 다양한 첨단무기를 유도해서 차례로 적을 섬멸한다. 부대원들은 주로 전투로봇의 원격제어와 정비, 적의 공격에서 안전한 장소에서 화력지원을 맡게 된다. 미 육군은 로봇무기로 무장하게 될 첫 번째 전투부대(UA)를 내년에 창설한 뒤 오는 2018년까지 지상군 병력 대부분을 UA 편제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미 국방부는 이 같은 로봇 기반의 전장환경을 ‘미래형 전투시스템(FCS)’이라 정의하고 2012년까지 기술개발에만 무려 17조8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앞으로 미 육군의 무인로봇장비 구매가 본격화되면 어림잡아 145조원의 무기시장이 새로 열릴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미군은 팩봇, 탈론 스워드 등 1000여대의 다양한 군사용 로봇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치안유지에 투입하고 있다.
◇왜 군사용 로봇인가=미 국방부의 관계자들은 FCS사업을 가리켜 미국 역사상 가장 야심적이고 혁명적인 프로젝트라고 자평한다. 이제 미국은 하늘과 바다뿐만 아니라 지상전에서도 거의 인명피해를 입지 않고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지상전에서 로봇무기를 앞세운 나라(미국)와 그렇지 못한 보통 국가의 승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병사들이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며 로봇전투차량을 상당수 파괴해도 미군 측의 사상자는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지상군 투입 시 인명피해가 줄어들수록 미 행정부는 분쟁해결을 위해 군사적 행동을 쉽게 선택할 수 있고 미국의 군사적 패권은 더욱 강화된다.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이 신형 전차·자주포·헬기 도입사업을 잇달아 취소하고 로봇무기에 막대한 자금을 퍼부은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나라도 감히 도전할 엄두를 못낼 힘의 우위. 이것이 군사용 로봇개발을 통해 미국이 노리는 전략적 목표다.
미국의 FCS사업이 향후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의 우방국가들도 경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군사용 로봇 도입에서 미국의 독주를 방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군사용 로봇의 기술수준과 예산규모, 실전경험 등 무엇하나 미국을 따라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의 군사강국을 자처해온 프랑스는 로봇무기 분야에서 미국의 독주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자존심이 무척 상한 처지다. 냉전이 끝난 후 꾸준히 군비를 감축해온 독일도 국방로봇에 이렇다 할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뛰어난 로봇원천기술에도 불구하고 평화헌법의 제약 때문에 국방로봇 개발에 아직 소극적이다. 반면에 한국은 아시아의 군사로봇강국으로 조용히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한국의 국방로봇 개발 현황=한국은 지상용 군사로봇을 본격 개발한 지 2∼3년 만에 프랑스·독일 등 전통적인 육군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에 올라섰다. 한국의 군사로봇기술은 현재 세계 3위권으로 국력을 감안하면 충분한 수준이다.
군사로봇 개발의 중심인 대덕 국방과학연구소(ADD)는 6개의 바퀴나 다리로 각종 장애물을 넘나드는 ‘견마형(犬馬型) 로봇’을 2012년까지 개발해 정찰·지뢰탐지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또 시가전을 위해 장갑차 형태의 ‘다목적 감시 로봇차량’과 ‘투척형 정찰로봇’도 개발된다. 2015년에는 협동작전이 가능한 경전투 로봇, 2018년에는 공중무인헬기 및 다목적 화력지원차량도 실용화될 예정이다. ADD는 군사용 로봇차량의 다중 장애물 회피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UC버클리·시드니 대학과 손잡고 오는 11월 미국 DARPA가 추진하는 도심 로봇차량대회인 ‘어번 챌린지’(Urban challenge)에 참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 밖에 삼성테크윈은 휴전선의 철책경계를 지원하는 용도로 4㎞ 전방까지 감시하는 경계용 로봇을 선보여 세계적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국이 국방로봇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북한과 대치하고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군사적 환경과 잘 발달된 IT산업 인프라 때문이다. 또한 출산기피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도 군사용 로봇개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ADD의 박용운 무인자율화 연구팀장은 “한국은 부족한 병역자원을 대신할 자동화 수요가 크고 군수산업도 발달해 군사로봇의 수요와 생산이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상용 군사로봇에 적용되는 자율항법기술은 자동차산업에도 큰 파급효과가 있다”면서 민간기업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군사용 로봇은 현대판 강철검
최근 끝난 MBC 드라마 ‘주몽’에서 강철검을 만들어 한나라의 공격을 막아내고 고구려를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대장장이 모팔모가 등장한다. 당시 주몽이 나온 부여는 강철 제조술이 떨어져 한나라의 속박을 받는 신세였다. 드라마에서 모팔모는 수백 번의 노력 끝에 쇳물에 황토와 조개를 섞어 쉽게 깨지지 않는 강철검을 만드는 초강법을 개발한다. 모팔모가 만든 강철검과 철갑옷을 입은 고구려 병사들은 용기백배하여 한나라에 맞서고 앞선 제철기술은 훗날 수·당제국과 겨루는 기초가 됐다.
요즘 개발이 한창인 군사용 로봇은 21세기의 강철검이자 철갑옷이라고 할 수 있다. 적의 포화에 전투차량이 파괴돼도 우리 군사들이 다칠 이유가 없는 로봇이야말로 궁극의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전시상황에도 국민 총동원이 어려운 민주국가에서 곧바로 실전에 투입 가능한 전투로봇의 국산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요즘 신세대들은 국가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는 성향이 약하다. 따라서 로봇 기반의 전투부대를 갖춘 국가는 그렇지 못한 나라에 비해 군사적 선택의 폭이 넓다. 로봇무기가 적국에 주는 심리적 압박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설사 상대 측도 유사한 로봇무기를 갖춘 경우는 교전을 해도 인명 피해가 없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높아진다.
로봇무기가 비인도적이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지만 한국처럼 핵무기도 없는 중소국에서 군사용 로봇 개발마저 소홀히 했다가는 유사시 주변국의 군사적 위협에 꼼짝없이 끌려다니기 십상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상황을 해결하고 로봇무기로 군조직 개편을 완료했다면 지금처럼 북한정권에 유화적으로 나왔을까.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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