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공룡들의 대회전-HP·델

 컴퓨팅 기반의 IT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룡들의 움직임도 한층 빨라졌다. 잇따른 인수합병과 기술 및 비즈니스 혁신으로 현대사회의 IT 혁명도 이끌고 있다. 실리콘밸리 신화의 물꼬를 튼 HP와 유통혁명의 신화를 가져온 델도 이러한 ‘광속’ 혁명을 이끈 주인공들이다. 특히 두 회사는 세계 PC 시장 왕좌를 두고 내년 불꽃 튀는 대결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창업은 곧 IT혁명=HP와 델, 두 거물 기업의 창업은 곧 새로운 IT 혁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HP는 과수원에 불과했던 실리콘밸리를 미국의 IT 전진기지로 탈바꿈시켰다. 델은 직접 조립, 직접 판매 방식으로 IT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유통 혁신을 촉발시켰다. 두 회사의 출발은 볼품없었기에 역설적으로 IT 혁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잘 설명해준다. 1939년 1월, 스탠퍼드대학 동창생이었던 빌 휴렛과 데이브 패커드는 캘리포니아 팰러앨토의 허름한 창고에서 HP를 설립했다. 실리콘밸리 탄생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이 차고를 역사 명소 976호로 지정하고 2005년 복원했다. 19살의 마이클 델도 단돈 1000달러로 델컴퓨터를 창업했다. 재고부담과 중간 마진을 없앤 그의 독특한 직판 방식은 비즈니스 혁신만으로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증명해보였다. 델의 공급망관리(SCM)는 어느 기술 못지않은 과학성으로 경영대학원에서 벤치마킹 1호로도 떠올랐다.

 ◇인재 끌어 모은 HP웨이=HP의 첫 제품은 월드디즈니의 영화 ‘환타지아’용 사운드 시스템. 이후 HP는 IT인프라, 퍼스널컴퓨팅, 글로벌 서비스, 이미지 프린팅 등 각 분야에 수천개의 혁신 제품을 쏟아냈다. 61년 동안 어떠한 시장 여건에서도 매년 흑자를 기록한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창고에서 출발한 회사가 어디에서 이러한 혁신의 힘을 얻었을까.

 HP 관계자는 ‘HP웨이(way)’에서 혁신의 원천을 찾았다. HP웨이는 직원들을 존중하고 개인을 신뢰한다는 데 기초를 둔 HP의 경영철학이다. HP는 직원들이 생각하는 바를 솔직히 말하고 모든 계층의 관리자에게 문제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격려한다. 직원과 이윤 나누기, 결정권 하부이양, 문호 개방 정책 순화관리 등 HP의 독특한 정책들은 실리콘밸리의 명석한 두뇌들을 끌어 모았고 이들은 HP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델 정교한 SCM, 타의추종 불허=“15인치 모니터 재고가 떨어졌죠? 그럼 17인치를 동일한 가격에 파십시오.” 실제로 델이 과거에 취했던 정책이다. SCM을 통해 시시각각 부품 가격 변화를 예측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델 SCM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델 공장에는 90분마다 필요한 부품이 배달되며 고객 주문과 맞지 않는 부품이 선택되면 경고음도 울린다. 작업량 폭주 시에는 엔지니어 직원을 즉각 추가 투입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도 갖췄다.

 델의 재고회전율은 더욱 놀랍다. 98년 7일 수준이었던 재고 규모는 2000년 6일, 2001년 5일 수준으로, 현재 3∼4일 수준으로 떨어졌다. 낮은 원가구조를 갖출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델 측은 경쟁사들의 회사 운영 비용이 20% 정도인 데 비해 델은 8% 수준이라고 말했다.

 ◇내년도 컴퓨터 시장 왕좌는 누구?=IT업계는 내년도 PC 판매 1위 자리를 누가 차지하는지를 두고 HP와 델의 행보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새 운용체계 ‘윈도비스타’가 본격 출시돼 PC 시장이 또 한번 요동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컴퓨터 시장 1위 자리는 HP와 델 양자의 대결로 압축된 지 오래다. HP는 2002년 컴팩 인수라는 대형 M&A를 통해 덩치를 키웠고, 델은 직판 모델을 가속화해 PC를 넘어 서버·스토리지, HP 텃밭인 프린터 시장까지 공략 중이다. 반면에 IBM은 지난해 PC사업을 중국 업체에 매각해버렸다.

 숨막히는 경쟁 속에 델은 2001년부터 5년 연속 세계 PC 시장 1위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HP 저력도 용틀임을 시작했다. HP는 지난 3분기 PC 시장에서 델을 누르고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내년에는 매 분기 1위도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PC 업계 관계자는 “양사의 진검승부는 2007년에 펼쳐질 것”이라면서 “HP가 마크 허드 회장 아래 대대적인 혁신의 진가를 보여줄 것인지, 델이 데스크톱PC에 이어 노트북PC, 프린터까지 신화를 이어갈지 그 향배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미니 인터뷰/한국HP - 최준근 사장>

 “칼리 피오리나, 마크 허드 등 CEO 영입으로 HP웨이 실천방법도 다양해지고 있지만 창업자의 인본주의 경영 철학은 계속될 것입니다.”

 최준근 한국HP 사장은 HP 정신이 무엇보다 매년 40조원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2007년 화두로 HP가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차세대 데이터센터 모델을 들었다.

 HP는 그동안 변화무쌍한 비즈니스 환경에도 민첩하게 대처하는 기업이 되기 위한 하부구조(인프라)를 제시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HP는 연중 무중단, 자동화한 IT 환경을 위한 모형센터인 ‘AI(인공지능) 디스커버리센터’를 지난해 11월 한국 지사 내 오픈했다.

 “차세대 데이터센터 등 선진 인프라에 관심이 많은 한국에서 글로벌 레퍼런스를 먼저 선보이겠습니다.”

 <인터뷰/델코리아 김인교 사장>

 “정교한 물류망운영(SCM)시스템을 바탕으로 일일 단위 실적을 체크하는 등 긴장을 늦추지 않는 문화도 델이 승승장구하는 비결입니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후 주간 최대 매출 기록을 달성한 김 사장은 대기업과 공공 등 굵직굵직한 고객사를 직접 챙기고 있다. 성장 속도에 자만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2007년 매출 목표도 공격적으로 잡았다.

 김 사장은 “아직 델의 글로벌 실적과 비교하면 한국에서의 시장 점유율은 낮은 편”이라면서 “그 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아니겠다”고 했다.

 최근 델이 중국 샤먼시에 1만5000㎡ 규모의 신규 공장을 완공한 것도 강조했다.

 “델이 핵심 경쟁력이 SCM에 있는 만큼, 중국 공장 신설은 국내 주문 물량에 대해 더욱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된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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