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다. IT 특성화를 기치로 내건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가 처한 현실이 암울하다. 통합과 민영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성과 소멸의 세상사를 보는 듯하다. 지난 19일 ICU 이사회는 중장기 발전방안을 논의했으나 KAIST와의 통합에 관해서는 결론을 유보했다. 이 문제는 내년 4월 이사회에서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ICU는 실현 가능한 자립방안을 이때 내놓아야 한다. “통합이냐 민영화냐.” ICU로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문제다. 통합에 ICU 학생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통합 찬반 투표에서도 참가자의 96%가 반대했다. 비대위가 구성되고 통합반대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ICU의 지난 과정을 보자. 지난 97년 문을 연 ICU는 IT특성화 대학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왔다. 특히 응용기술과 IT 경영에 강하다. 또 수요 맞춤형 교육으로 올해까지 829명을 배출했다. 일본은 ICU를 벤치 마킹한 IT특성화 대학을 국립정보통신연구원을 중심으로 설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ICU는 해외에 분교설립도 추진 중이다.
이런 ICU가 통합논의에 휩쓸리게 된 것은 예산 때문이다. ICU는 매년 정부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는 95억원을 받았다. 올해는 논란 끝에 예산이 75억원으로 줄었다. ICU가 IT특성화 대학으로 도약하려면 돌파구가 필요했다. 정보통신부는 이에 따라 ICU특별법 제정과 민간컨소시엄 구성방안, KAIST와 통합 등 대안을 검토했다. 이 가운데 ICU특별법은 지난 2004년 12월 59명의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했으나 기존 대학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중단됐다. 아쉬운 대목이다. 민간컨소시엄은 아직까지 별 진전이 없다. 그래서 KAIST와 통합이 논의됐다. 응용기술에 강점을 가진 ICU와 원천기술에 강하고 IT기반 융합기술 환경을 가진 KAIST가 통합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란 게 통합론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ICU의 설립취지를 살리고 IT특성화 교육모델을 유지하면서 두 대학이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반대론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정통부 입장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이 어렵게 설립한 IT특성화 대학을 다른 대학에 통합시켜야 하니 곤혹스럽다. 정통부에 눈 흘기는 측도 있다. 과학이 세상을 바꾼다면서 이공계 육성에 혈안이 돼 있는 요즘 IT강국의 미래를 책임질 IT특성화 대학에 이 정도도 지원하지 못하느냐는 질책이다. 정통부도 기존 길을 가고자 하나 주변 상황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국회가 예산을 배정해 주지 않으면 정통부도 대안을 찾기 힘들다.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위기는 극복해야 한다. 당장 예산만 가지고 무 베듯 결론을 내리는 건 졸속이다. IT특성화 대학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융합시대지만 대학은 IT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대학과 대학생 그리고 IT산업, 나아가 국가성장에 보탬이 될 것인지가 결론의 잣대가 돼야 한다. 최선이 아닐 때는 차선을, 아니면 차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하나만 고집할 수는 없다. ICU는 홀로서기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도 통합을 재촉하지 말자.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결론을 내야 반발도 후회도 없다. 세밑 서산의 붉은 해를 보며 새삼 생성과 소멸을 읊어 보는 것도 ICU의 현실이 딱하기 때문이다. ICU의 구세주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 나요” 하며 누가 손들고 나설 것인가.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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