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워진 `게임위`

“사행성은 죄고, 표현의 자유는 푼다.”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시각이 확 달라졌다.

 17일 게임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기만·이하 게임위)는 극한에 가까운 폭력 묘사로 지난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시절 등급 보류로 국내 시판이 불허됐던 게임인 ‘GTA’와 ‘모탈컴뱃’에 대해 등급을 부여해 시판토록 최종 결정했다. 등급위원들 사이에서도 격론을 벌인 끝에 나온 결과로 볼 때 게임위가 앞으로 게임물의 창작·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최대한 관대한 기준을 견지할 것으로 보여 주목을 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두고 청소년·학부모 단체의 반대도 만만치 않아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어떤 게임들인가=지난 92년 미국에서 처음 발매된 ‘모탈컴뱃’은 신체 손괴 등 극한의 폭력성으로 미국·영국·프랑스 등 게임 선진시장에서도 많은 논란 끝에 등급을 부여받은 게임물이다. 또 ‘GTA’는 80년대 미국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가상의 ‘악의 도시’를 만들어 갱들과 전쟁에 가까운 세력 다툼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찰관과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과 마약, 성매매 등이 묘사돼 있다.

 지난 영등위 시절 이들 게임은 몇 차례 등급심의에 올려졌으나 번번이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아 국내에서는 10년 가까이 시판되지 못했다.

 ◇국내 창작력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로=게임업계는 그동안 이들 게임이 시판되지 못했던 배경과 관련해 “게임을 가상의 세계로 보지 않고 현실과 무리하게 연결시켰던 데서 직접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그만큼 국내 게임 개발자의 창작 영역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셈”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주요 게임업체 관계자들은 “그동안 지나친 규제로 인해 국내에서 개발해 내수시장에서 상용화해 보지 못한 게임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은 시작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게임위의 이번 전향적 결정이 국산 게임의 창작력을 한층 높이는 도약대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기만 게임위 위원장은 “도박과 사행성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지만 폭력성과 선정성 등 또 다른 기준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가능한 한 존중하는 탄력적 방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 검열 철폐와 맞먹는 결정” vs “청소년 유해매체 합법화”=게임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을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인 영상물 사전 검열 철폐와 맞먹는 전향적 판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성년자가 우회적으로 접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판이 금지됐던’ 선례에서 벗어나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청소년의 접근을 제한한 채 시판의 길은 터준 것이라는 시각이다.

 지난 10월 게임위 출범 때 고령자·비전문가 주축 등을 근거로 게임산업에 대한 편협한 접근을 우려했던 업계에서도 이번 결정을 내심 크게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정보감시단 관계자는 이번 조치에 대해 “마약·살인 등을 주제로 한 이 게임들이 버젓이 시판되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게임에 빠지다 보면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고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가져와 이를 표현해 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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