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해외 융합신산업 현장을 찾아서: 일본
일본은 세계 최고의 기술 선진국이다. 특히 부품소재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를 주름잡는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나 휴대폰 산업도 부품 소재 분야에서는 대일 의존도가 높다.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하던 일본이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주춤했지만 최근 다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일본은 재도약의 실마리를 융합신산업에서 찾고 있다. IT와 BT, NT 등의 경계가 허물어진 융합신산업은 부품소재가 핵심이다. 일본은 특유의 부품소재 기술력을 밑거름으로 융합신산업을 범국가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고 정부도 융합신산업에 힘을 쏟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융합신산업 기술을 자랑한다.
◇일본 융합신기술의 산실=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지난 2001년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15개 연구기관이 하나로 통합돼 만들어졌다. 지역적으로는 도쿄와 쓰쿠바 본부를 비롯해 전국 10개 지역에 연구센터가 있다. 전체 인력은 3300명 내외이며 이 가운데 순수 연구 인력만 2500명을 웃돈다.
해외에서 온 연구원까지 더하면 약 7000명 이상의 국내외 석학들이 정보통신, 바이오, 나노테크놀로지, 에너지, 지질, 표준 등 6개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국의 센터 입지를 모두 더하면 255만㎡에 이르고 1년 예산만 1조원이 넘는다.
연간 500건 내외의 특허를 일본과 외국에서 등록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특허료만 해도 연간 50억원 이상을 받고 있다.
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특징은 지역 별로 특화된 연구를 한다는 점이다. 먼저 본부 격인 쓰쿠바센터에서는 6개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쓰쿠바센터 이외에는 전문 분야가 별도로 있다.
도쿄 임해부도심센터에서는 로봇과 바이오테크놀로지, 홋카이도센터에서는 게놈 기반의 바이오테크놀로지, 도후쿠센터에서는 에너지 절감 화학 기술, 주부센터에서는 첨단 소재, 간사이센터에서는 유비쿼터스 에너지와 의료엔지니어링, 시코쿠센터에서는 헬쓰케어, 주고쿠센터에서는 바이오테크놀로지 기반의 재활용 기술, 규슈센터에서는 센서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산업기술종합연구소에서 해외협력을 담당하고 있는 시미즈 다카시 박사는 “연구 분야의 중복을 피하고 보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주력 연구 분야를 나눴다”며 “특히 해당 지역의 대학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로봇과 바이오 분야 등 세계 최고=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연구 성과는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로봇이나 바이오테크놀로지, 정보통신 등의 영역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쓰쿠바센터에서는 ‘디지털휴먼연구센터’가 눈에 띈다. 여기서는 사람의 각종 행동을 모델화한 후 이를 각종 생활용품에 적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마키 카즈히토 박사는 “이러한 작업의 최종 목표는 사람과 가장 근접한 동작이 가능한 로봇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고의 로봇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답게 쓰쿠바센터에는 사람과 어울려 축구를 하거나 정교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로봇도 있다.
이밖에 나노 기술을 이용한 반도체 개발과 고밀도 하드디스크 헤드, 소형 전압시스템 등도 쓰쿠바센터가 개발한 연구 성과다.
도쿄 오다이바에 있는 임해부도심센터도 주목할만하다. 임해부도심센터의 핵심은 바이오연구센터다. 연구 자금만 250억원에 달하며 99명의 기업 연구원을 포함, 200여명의 연구원이 있다.
바이오센터의 자랑은 ‘극저온전자현미경’과 ‘질량분석계’다. 바이오센터에서 직접 발명한 극저온전자현미경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으로 전자 수준의 미세한 관찰이 가능하다. 산업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막 단백질을 규명했으며 작년에 노벨상을 받은 피터 아그네도 이 현미경 사용했다.
◇단일조직과 풍부한 예산=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우리나라 연구기관과 관련 부처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선 단일 연구조직의 효율성이다.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도쿄 본부를 중심으로 10개 연구센터가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 해당 분야마다 연구기관이 별도로 있는 국내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단일 조직이기 때문에 연구 분야의 중복은 찾아볼 수 없다. 매년 중복 연구 문제를 일으키는 우리나라와는 효율성 면에서 앞설 수밖에 없다.
지역마다 균형있게 분포돼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연구기관이 수도권과 대전 지역에 집중돼 있는데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최북단 홋카이도에서 최남단 규슈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퍼져 있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명제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대학 및 기업과의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연구 환경도 우리나라 현실보다 한발 앞서 있다. 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예산은 67%가 경제산업성에서 직접 지원된다. 23%는 다른 부처와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마련된다. 기업의 협조나 외부 프로젝트를 통해 조달되는 예산은 10%를 밑돈다. 예산을 따내기 위해 실제 연구보다 프로젝트 기획안 짜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 우리 현실에서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인터뷰-도쿄대학 김범준 교수
일본 최고의 대학은 단연 도쿄대학이다. 흔히 도쿄대학은 법학부로 대표되지만 공학부 역시 일본을 넘어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도쿄대학 공학부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은 ‘산업과학연구소’다.
지난 2000년 고마바 캠퍼스 내에 지은 산업과학연구소는 기초공학과 바이오기계공학, 정보전자공학, 소재환경공학, 인간공학 등 5개 분야의 연구센터를 포함하고 있다. 매년 3000건이 넘는 논문이 발표되고 있으며 400억원 이상의 연구비가 외부에서 지원되는 이른바 도쿄대학 공학 연구의 메카다.
도쿄대학 공학부에는 2명의 한국인 교수가 있다. 그 중에서 아직 30대의 나이에 세계 유수의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김범준 교수(38)는 미세한 기계 관련 연구 분야인 마이크로메카트로닉스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나노패터닝이나 단백질 나노프린팅, 마이크로프린팅 칩 등을 연구하고 있다. 이는 10㎚ 영역의 가공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김 교수는 “머리카락 굵기를 지구라고 가정하면 10㎚는 지구에 있는 사람 한명 정도에 해당하는 매우 작은 단위”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마이크로메카트로닉스 기술은 일본의 80% 이상이며 일부 분야에서는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구조적으로 일본이 앞서 있는 점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학과 기업, 정부기관의 연구가 중복되지 않고 합리적으로 나뉘어져 있다”며 “연구실적 평가의 다양성과 공정성이 어느 정도 성숙돼 있어 단기적이 아닌 장기 평가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는 연구비 사용에 있어서의 부정이 없도록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국민의 열정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일본 국민의 치밀함도 필요하다고 김범준 교수는 당부했다. 김 교수는 “일본인은 모든 일의 진행이 철저한 사전계획과 준비에 의해 진행된다”며 “한국에 비해서 사무적 일의 진행이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느리고 융통성이 없어 보이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일처리가 빠르다”고 말했다.
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
많이 본 뉴스
-
1
전자문서도 원본 인정…디지털정부 구현 속도
-
2
쏘카, 3분기 영업이익 46억원…5분기 만에 흑자전환
-
3
현대차 수소연료전지 탑재한 '수소 버스' 中 도로 달린다
-
4
박살난 사이버트럭…머스크는 왜 자랑했을까? [숏폼]
-
5
“차량용 반도체 판 키운다”…동운아나텍, 유럽·미·일 지사 신설·확대
-
6
“내년 출시 '아이폰17 에어' 계획보다 두께 얇지 않을 것”
-
7
“가자 미국으로” 韓 의료AI 총집결…글로벌 도전
-
8
[ET라씨로] TYM, 우크라와 재건 사업 협력 논의에…주가 上
-
9
HBM4, 시스템 반도체 기술이 승패 가른다
-
10
“AI, 로봇 코드 짜줘”…NH농협은행 '생성형AI-RPA 연계 시스템' 구축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