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방융합,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제6부:세계는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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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영국 

영국은 통신과 방송 분야의 규제에 관한한 세계 어느 국가 보다 앞선 선진국이다. 컨버전스 시대에 맞는 제도와 규제 체계를 일찍부터 정비, 가장 진보적인 규제 모형을 운영 중이다. 방송법과 통신법이 분리 운영 중이고 정책 및 규제 기관 조차 분리된 우리 실정에 비춰볼 때, 수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사례다. 영국은 미디어 변화를 이끌고 기술 및 시장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이미 2003년 방송과 통신법을 통합하고 규제 기관도 단일화시켰다. 오히려 IT 강국이라는 한국 보다 한 걸음 앞서 융합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형국이다. 이번 회에서는 규제 선진국 영국의 사례를 통해 통·방 정책의 미래를 짚어본다.

◇규제 모형의 선진국=영국은 이미 2000년 융합시대에 적합한 규제체계 구축을 위해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미래’라는 백서를 발표하며 새로운 시대를 대비했다. 2003년 7월에는 방송법과 통신법을 통합한 ‘커뮤니케이션법’(Communication Act 2003)을 제정하고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규제 모형의 대안을 제시했다. 그해 12월에는 통합규제기관인 OFCOM(Office of Communication)까지 설립했다.

OECD 과학기술산업국 산하 정보통신정책위원회(ICCP:The Committee on Information, Computer and Communications Policy)의 디미트리 입실란트 부위원장은 “법과 규제기관을 이미 하나로 통합한 영국은 하나의 법, 하나의 체제로 운영되는 수평적 모델”이라며 “규제체계의 새로운 기준의 관점에서 영국은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강조한다.

영국도 90년대까지는 통신·방송 부문의 정책 및 규제 기관이 난립했다. 통신·방송 정책을 통산산업부(DTI)와 문화미디어체육부(DCMS)가 각각 관장하고 이를 위한 별도의 규제위원회가 5개까지 만들어졌다. 현재 우리나라의 구조보다 더 복잡한 상태였다. 통신과 방송 부문의 규제기구 통합 요구가 지난 98년 의회에서 제기됐을 때 통산산업부와 문화미디어체육부 모두 반대했다. 규제기구 통합이 시기적으로 이르고 기존 제도로도 충분히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2000년 들어 산업 전 분야에 ‘경쟁원리’가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통신과 방송 간 이념 및 시각 차이가 극복될 수 있었다. 공정성, 예측가능성 등을 높이기 위해 규제체계의 변화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최소한’의 규제 원칙=2003년 제정된 ‘커뮤니케이션법’의 핵심은 ‘최소한의 규제원칙’(Light Touch Regulation)이다. 지상파 민영방송인 ITV의 독점 소유금지 철폐, 1개 이상의 전국 라디오 민방소유에 대한 금지 철폐, 신문합병에 있어 형사처벌 철폐, 이종매체 간 교차 소유금지 철폐, 비유럽 외국 자본의 투자 허용 등 각종 소유 규제를 철폐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롭게 등장하는 경계서비스에 대해서도 똑같은 룰에 따라 최소한의 규제만을 가한다는 원칙을 마련한 점이다.

2003년 12월 설립된 OFCOM은 기존 5개 규제기관의 전권을 이양받은 거대조직으로 출범했지만 민간기업의 조직원리를 상당부분 적용, 효율성을 제고시켰다.

영국은 규제 선진국답게 그 어느 나라 보다 빠르게 IPTV(TV over DSL) 등의 컨버전스 서비스가 도입됐다. 현재 영국 내 약 2만여 가구가 DSL을 통한 TV 즉, IPTV에 가입 중이며 최근 IPTV 시범방송 중인 BT도 본방송을 준비 중이다.

IPTV에 대한 규제 원칙도 명확하다. 네트워크나 플랫폼이 기술 중립성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콘텐츠 중심의 규제 만을 채택한다. 당연히 네트워크나 플랫폼 사업자의 신규 면허는 필요치 않다. IPTV를 통해 제공되는 방송이 모두 기존 면허를 취득한 방송사업자들의 콘텐츠이기 때문에 채널 운영자만 면허를 갖고 있으면 그만이다. 나아가 주문형(On Demand) 방식의 인터랙티브 서비스는 면허 자체가 필요치 않다. 라이센스가 필요한 방송의 범위도 일반 대중이 받아볼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결정하기 때문에 인터랙티브 방식은 아예 면허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설명이다.

◇소비자 보호와 기술발전 사이의 균형=사이먼 베이트 OFCOM 대외협력 부장은 “투명한 규제 절차, 증거 중심의 합리적 판단 등이 OFCOM 운영의 핵심 원칙”이라며 “소비자 보호와 규제완화 문제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에 무엇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규제를 최소화했을 때, 콘텐츠 균형 발전 및 소비자 보호 기능이 약화되지 않겠냐는 우려에 대한 답변이다. 통신 분야에 대한 OFCOM의 규제 기능은 주파수 배분, 상호접속 및 네트워크 개방 등 최소한의 영역에 국한한다. 자칫 통신의 독과점 및 소비자 보호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한 OFCOM의 기준은 명확하다. 네트워크와 플랫폼은 기술중립성을 갖기 때문에 규제를 최소화시킨다는 입장이다. 일반 대중이 받아볼 수 있는 방송 콘텐츠의 경우, 면허체계를 운영한다. 컨버전스 분야인 VOD 등 인터랙티브 서비스의 콘텐츠 규제는 사실상 없다. 이 부분까지 규제기관이 사전 규제하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산업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기술발전에 우위를 두는 대신 사업자들의 자율과 소비자들의 선택에 자정기능을 맡긴다는 설명이다. OFCOM은 최근 EC가 인터랙티브 서비스 및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를 중심으로 새로운 규제 원칙을 내놓은 데에도 반대한다.

사이먼 베이츠는 “청소년 보호와 증오연설의 방지를 위해 콘텐츠 규제를 강화하려는 EC의 고민은 이해하지만 미디어 전반의 콘텐츠를 규제하려는 시도는 기술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규제 자체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남는다”며 “신기술 분야는 사업자들 및 소비자들의 자정 능력에 맡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런던(영국)=김태훈기자@전자신문, taehun@

◆인터뷰-OFCOM 대외협력 부장 사이먼 베이츠

-2003년 규제기구 통합 과정에서 반발은 없었나

▲의회에서 처음 통합 요구가 제기됐을 때는 반대가 많았다.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주장도 있었고 기존 조직의 탄력적 운영으로 컨버전스 분야에 대처할 수 있다는 생각도 많았다. 하지만 경쟁원리가 일반화되면서 통신과 방송 간 시각 차이가 극복될 수 있었다. 2003년 5개 기구를 통합하면서 전체 인원의 34%를 감축했다. 법에 의해 강제되다 보니 내부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6개월∼1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안정된 상태다.

-전문규제기관과 일반 규제기관 과의 역할 배분은

▲공정거래위원회와 OFCOM은 업무제휴를 통해 지속적으로 협력 중이다. 국민 경제에 일반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신·방송 기업 간 M&A는 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한다. OFCOM은 전문 식견을 바탕으로 자문역할을 담당한다. M&A를 제외한 나머지 커뮤니케이션 영역은 OFCOM이 주도한다. 물론 MOU에 따라 공정위도 OFCOM에 각종 자문을 할 수 있다.

-인터랙티브 서비스에 대한 규제 공백은 없는가

▲신기술에 대한 영역을 전통적인 규제 체계로 모두 대응한다면 기술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 시장에서 기술이 충분히 대중화된 이후 이를 제도화해도 늦지 않다. 제도 자체가 진입장벽이 되서는 안된다는 게 OFCOM의 입장이다. VOD나 온라인 콘텐츠의 경우, 사업자의 자율과 소비자들의 선택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향후 인터랙티브 서비스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며 특히 1:1 서비스의 성격도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 모든 것을 규제하려한다면 현재 OFCOM의 수십배되는 인력으로도 감당키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인터렉티브 콘텐츠에 대한 규제는 실효성도 떨어진다.

◆영국의 통·방 규제기관

영국의 통·방 규제기관은 통합기구인 OFCOM과 함께 공영방송인 BBC를 자율규제하는 BBC 경영위원회로 구분된다. 2003년 12월 출범한 OFCOM은 통신과 방송 관련 전반적인 규제를 담당한다. 시민의 권익증대, 주파수 이용의 최적화, 통신과 방송사업자 면허, 방송주파수 할당, 독과점 및 불공정경쟁 규제 및 내용 규제 등 규제 전반을 담당한다. 비상임위원 6인을 통상산업부와 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이 공동 임명 상호 균형을 유지하게 한다. 주주가 없는 독립적인 기업이며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진다.

조직 구성원은 공무원이 아니며 조직의 형태는 공기업의 성격을 갖는다. 이사회를 중심으로 집행부 및 각종 자문위원회 등으로 구성된다. 통상산업부와 문화미디어체육부가 균형감있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구조이며 요직은 통신과 방송 부문을 고루 경험한 전문가로 구성된다. 전문 규제기관인 OFCOM의 힘이 거대해지면서 일반규제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와의 역할 분담도 과제다. 영국은 기업 인수합병(M&A) 분야는 공정위가 중심에 서 판단하며 OFCOM이 자문기능을 수행토록 운영 중이다. 이밖의 모든 통신·방송 관련 사항은 OFCOM이 주도한다. 양 기관은 업무제휴를 맺고 상호 자문 기능을 활성화하고 있다.

BBC 경영위원회는 OFCOM과는 별도로 공영방송인 BBC의 자율규제를 담당하는 기구다.

12인의 경영위원들로 구성되며 문화미디어체육부장관의 제청에 의해 여왕이 선임한다. 왕실칙허와 협정서에 기반한 주요 사업목표를 설정하고 BBC가 제출한 전략 및 정책 활동 전반도 승인 및 감독한다. BBC의 전반적 수행결과를 매년 연례보고서에 반영, 국회에 보고한다. OFCOM은 공영방송 BBC에 대해서 시청자의 불만처리, 내용 규제 중 사회풍속에 어긋난 내용의 심의만 담당할 뿐, 그 외 규제는 BBC 경영위원회가 담당한다.

현재 BBC경영위원회는 규제기관인 동시에 내부기관이라는 모순으로 책임성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BBC 개혁문제 검토를 위해 문화매체체육부가 임명한 Burns 위원회는 지난해 2월 공영방송위원회의 별도 설립을 대안으로 제안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