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정현 교수(중앙대)
1945년 8월 7일 오전 7시 9분, 히로시마에 ‘리틀보이’라는 별명의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이 원폭으로 히로시마는 거의 석기시대로 되돌아갔고,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히로시마의 인구 24만명 가운데 무려 14만명이 폭탄에 의해 희생됐고, 건물 9만채 가운데 6만2000채가 파괴됐다.
그러나 이런 피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일본군 대본영은 이 폭탄이 원자폭탄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원폭이 투하된 이후에도 대본영 내부에서는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놓고 첨예한 의견대립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의 머리 속에 일본 국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원폭 투하에 비견될 만한 상황이 한국의 게임산업에 불어 닥치고 있다. 그것은 사행성 PC방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사행성 논란이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전국적으로 4000개 이상의 사행성 PC방이 확산되고 있으며, 하루 수익이 500만원에서 1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스크린 경마에서 시작된 이런 사행성 게임은 바다이야기로 번지고, 이제는 사행성 PC방이라는 ‘사행산업의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사행산업에 대한 비판 속에 아케이드 게임 산업과 PC방 산업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사행성 PC방 문제는 PC방 산업을 넘어 게임포털과 온라인게임 산업 전반을 위협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향후 사행성 PC방의 도박성 문제는 게임포털의 도박성 문제로 비화돼 현재 국회에서 검토중인 사행산업 특례법(가칭)으로 결말을 볼 것이다. 만일 포털에서 제공하는 고스톱·포커와 같은 카드게임이 도박으로 규정된다면 게임포털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게임포털 다음으로는 온라인게임 전반의 중독성과 사행성 논란으로 확산될 것이다. 이 점에서 사행성 PC방 문제는 강 건너 불이 아니고, 집 안의 불이다.
그렇다면 사행성 PC방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첫째, 건전한 놀이와 도박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놀이와 도박의 구분에서 중요한 척도는 결과를 현금화할 수 있는지다. 사행성 비판론자들은 게임포털이 제공하는 게임머니가 아이템 중개업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현금화되는 과정이 사행성 PC방 앞에 주차한 봉고차에서 현금으로 교환되는 과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런 비판의 시시비비를 떠나 카드게임 머니의 현금화 과정을 차단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게임포털은 아이템 중개업체와 공동으로 게임머니의 현금화 과정을 차단해야 한다.
둘째, 단속을 넘은 산업적인 대안의 모색이다. 사행산업은 정부의 단속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와 같은 단속 일변도로는 일시적으로 사행산업을 위축시킬 수는 있어도 근절할 수는 없다. 특히 사행성 PC방이 PC방 산업의 성숙화에 의한 과당경쟁, 아케이드 게임 산업의 사양화로 촉발된 구조적인 문제며 이런 구조가 존속하는 한 형태가 다른 사행산업이 재생산될 것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정부는 특히 PC방 산업에 대한 제대로 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부처의 생색내기 정책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기존의 PC방 허가 기준인 500㎡를 150㎡(약 45평)로 축소한다는 건축법 시행령은 영세한 소형 PC방을 양산해 오히려 사행성 PC방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셋째, 게임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한 산업이 국민의 지탄을 받을 때 이미 그 산업의 발전가능성은 없다. 국민은 일반 PC방과 사행성 PC방을 구분하지 못하며, 그 여파는 게임포털에까지 미치고 있다. 물론 이런 인식의 발단이 사행성 PC방의 확산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러나 게임업계가 자신들과 관련이 없다며 이런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은 게임업계가 능동적으로 ‘사행성 게임 정화’라는 행동을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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