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외국기업 R&D센터 왜 미적거리나

 우리나라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던 외국계 IT기업들 가운데 뚜렷한 이유 없이 센터 설립 계획을 연기하거나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한다. R&D센터 설립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된 외국 IT기업들은 사이베이스·오라클·비즈니스오브젝트 등 데이터베이스나 기업용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명한 업체다. 이 같은 사례가 많고 적음을 떠나 그간 우리나라가 외국 IT기업 R&D센터 유치를 통해 조성하기로 했던 동북아 정보기술(IT) 허브 구축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매우 걱정스럽다.

 한국에 R&D센터 설립을 희망하는 외국계 기업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니 더욱 그러하다. 정보통신부가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 R&D센터를 설립하도록 유치한 외국 IT기업은 두 곳에 불과하다. 작년에 11개 외국 IT기업의 R&D센터를 유치한 것에 비하면 극히 저조한 실적이다.

 이처럼 외국 IT기업들이 R&D센터 설립에 미적거리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세계적인 R&D센터 유치사업을 하면서 부처별 건수 위주의 실적경쟁에 나선 폐단이 이제야 나타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우리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작년까지만 해도 외국기업 R&D센터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각종 혜택을 제시했으나 올해 들어서는 유치작업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등 외국기업 처지에서는 지원 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외국기업 스스로 생색내기용 한국 R&D센터 건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R&D센터 설립에 따른 가시적인 효과를 보장받지 못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해 209개 외국기업 연구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가 연구원 20명 이내의 ‘구멍가게’ 수준이었고 30%는 특허 등 지적재산권을 한 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름만 R&D센터일 뿐 실제로는 고객지원센터 역할밖에 못하는 곳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이미 설립된 R&D센터도 인력이나 설비 등 연구체계가 제대로 갖춰진 곳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외국 IT기업들이 당초 국내 R&D센터 설립 계획을 발표할 때 한국이 IT분야의 신기술 시험무대인 ‘테스트베드’로서 경쟁력이 있고, 우수한 연구인력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 정부의 세제 혜택과 자금 지원 및 초고속통신망 등 잘 갖춰진 IT 인프라를 이유로 꼽아 센터 설립에 적극성을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대조적이다.

 이는 외국 IT기업 R&D센터 유치사업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 면밀히 따져보고 개선할 것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R&D센터 유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를 주도하고 있는 정부와 유치 대상인 외국기업이 이익의 접점을 찾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미 유치한 외국기업에 대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R&D센터 설립 및 운영상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파악해 해결해주어야 한다. 일관성 있는 정책 기조 유지는 기본이다. 또 외국인투자 유치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제혜택과 노사문제다. 그러나 지금처럼 유치 업무 주관은 산업자원부, 세금문제는 재정경제부, 노사관계는 노동부 식으로 각자 영역을 주장하면 원스톱 서비스는 ‘말로만 그치는 서비스’가 될 것이다.

 특히 국내에 진출한 외국 IT기업의 R&D센터가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낼 수 있도록 국내 연구인력과 인프라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제 기능을 다하기 어렵고 첨단기술의 국내 파급이라는 당초 기대효과를 전혀 거둘 수 없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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