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청소년위원회가 게임물에 대한 사전·사후심의를 게임물등급위원회로 일원화 하도록 한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이중심의’ 악몽이 되살아날 전망이다.
청소년위는 최근 ‘청소년보호’를 명분으로 게임물에 대한 사후 규제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이에따라 문화관광부와 게임업계는 청소년위의 사후심의로 인해 게임산업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최근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하 게임진흥법)’을 공포하고 그동안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맡아오던 게임물 등급심의 업무를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등위)로 이관토록 했다. 진흥법이 제정되면서 그동안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해 왔던 게임에 대한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이번에는 국가청소년위원회(이하 청소년위)가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게임물에 대한 사후심의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게임업계는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꼴이 됐다”며 “청소년에 관한 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청소년위가 직접 사후심의에 나설 경우 종전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청소년보호가 사후심의 명분
국가청소년위원회(위원장 최영희)는 최근 게임물의 사후심의와 관련, 청소년보호를 위해 내부적으로 여러가지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임의 사전·사후심의를 모두 책임질 게임등위가 있지만 이를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위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진흥법안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기 힘들수도 있다는 것이다.
업체 한 관계자는 “청소년위가 진흥법의 시행령(안)을 시정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등 규제 강화하려 하고 있다”며 “청소년 보호를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너무 무리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청소년위에서 ‘청소년 보호’라는 칼자루를 들고 진흥법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위는 “진흥법이 청소년 보호보다는 산업 진흥에 중점을 둬 법안이나 시행령(안)으로는 청소년 보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청소년위는 이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따라 청소년위는 이미 사후심의를 강화하기 위해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청소년위가 사후심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청소년보호법’의 법률적 검토와 함께 자체적으로 사후심의를 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 한 관계자는 “청소년위가 자체적으로 게임을 사후 심의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진흥법도 손봐라 요구
그러나 청소년위가 자체적으로 심의 권한을 갖게 되면 국가기관이라는 점 때문에 ‘사전검열’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어 직접 나서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한 심의권을 갖고 있는 문화부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실현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이에따라 청소년위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그동안 게임물에 대한 사후심의를 담당해온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정통윤)에 도움을 청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청소년위가 그동안 정통윤에 게임물에 대한 사후 심의를 요구한 사례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사후심의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위 한 관계자는 “청소년 보호를 위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며 “심의기관에 재심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게임에 대해서는 적극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청소년위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게임진흥법 시행령(안)의 개정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위는 특히 15세 이용가 등급 삭제와 관련 진흥법의 개정까지 주장하고 있다. 게임등위 위원 구성에 있어서도 시민단체들의 참여폭이 좁다는 점을 지적하며 위원 구성에 대해 개정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처럼 청소년위가 사후심의 강화를 끊임없이 요구함에 따라 진흥법의 개정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산업적 여파도 상당히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청소년위가 이처럼 강도높게 나온다면 어쩔수없이 그들의 입장을 수용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문화부내의 분위기다. 이에따라 최악의 경우 산업의 육성을 위해 만들어진 진흥법이 ‘청소년 보호’를 위해 개정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특히 사후심의에 대해 청소년위원회가 직접 제동을 걸게 되면 그동안 게임물의 사후심의를 담당했던 정통윤에 비해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 정부와 업계의 공동 대응 필요
청소년위가 ‘청소년보호’라는 명분 아래 사후심의에 나설 경우 시민단체 뿐 아니라 사회적 여론이 게임을 부정적인 쪽으로 몰아가면서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보호와 산업 진흥은 어찌보면 양날의 칼날일 수 밖에 없다”며 “그러나 한국의 경우 청소년 보호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산업 육성은 뒤로 밀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로인한 산업의 위축은 그동안 정부에서 꾸준히 강조했던 ‘세계 게임 3대강국’ 실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는 청소년위의 사후심의 강화 움직임에 따른 별다른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우려하고 있다. 청소년위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어 문화부가 어떤 식으로든 청소년위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청소년보호법’이나 ‘진흥법’이 똑같은 법령이라는 점에서 같은 위치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부가 청소년위원회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문화부의 산업 육성 의지가 가장 중요한 대응책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업계 스스로 자정의 모습을 보이며 ‘건전한 게임 문화 조성’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낼 필요성도 있다고 조언했다.
업체 한 관계자는 “청소년위가 나서기전에 업계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며 “산업 육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지 함께 고민하고 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안희찬기자@전자신문 chani71@etnews.co.kr, ha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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