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IT업체들이 입주한 서울의 한 디지털단지에 봉고차 한 대가 멈춰서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린다. 즉시 단지 내에는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면 입주업체 직원들은 서둘러 회사문을 잠그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체신청 공무원, 검경 단속반이 불법복제 소프트웨어(SW) 단속에 나섰을 때 벌어지는 광경이다.
SW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의 갖가지 정책과 업체들의 R&D가 진행되는 가운데 보이지 않게 SW산업을 갉아먹는 것이 SW불법복제다. SW는 불법복제는 개발업체의 수익성에 직격탄을 날려 SW산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준다.
◇SW산업의 막대한 손실=웹사이트 구축에 필요한 컴포넌트 ‘덱스트업로드’를 개발 판매하는 데브피아. 한 카피당 23만원에 판매되는 이 SW는 현재 확인된 것만 4000카피 이상이 불법복제돼 사용 중이다. 중소 SW업체에게는 한 두해 매출과 맞먹는 금액이다.
데브피아는 국내시장 대신 미국시장과 일본시장 진출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홍영준 데브피아 사장은 “가치를 부여받기 전에 너무 쉽게 복제돼 수많은 SW개발 기업이 제대로 수출 한번 못 해보고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불법복제는 국내 SW분야를 가장 열악한 산업으로 전락시키고 SW개발 기업이 은행에서 문전박대 당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SW업체 사장은 개발한 SW가 불법복제돼 유통되는 현실을 참다못해 영업을 포기하고 직접 사용업체 찾아 사용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다닌다.
지난해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가 단속대상 업체들만을 대상으로 불법복제를 통한 저작권 침해금액을 조사한 결과 300억원을 넘어섰다. 단속대상 업체만을 대상으로 한 금액만 이 정도라면 전체 불법복제로 인한 금액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라고 SPC는 설명했다.
특히 국내 SW산업에 타격을 준다. 국내에서 불법 복제되는 SW 상위 10개 중 7개가 국산이다. 상위 10개 SW의 불법복제 건수 가운데 국산 SW가 차지하는 비율도 2002년 23.6%에서 2004년 33.8%, 2004년 42.4%로 매년 급증 추세다.
특히 온라인상 SW불법복제로 인한 피해가 급증해 웹스토리지 업체를 통한 저작권 침해 피해금액만 연간 2조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SPC의 추산이다.
◇사용자 의식제고가 필수=국내 SW불법복제율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는 분명하다. 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SW 불법복제율은 33.1%로 전년 33.7%보다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태원 프심위 공정이용팀장은 “최근 강화된 정부 단속활동과 정품 사용을 유도하는 관련기관의 컨설팅 활동이 복제율 감소를 이끈 주된 원인”이라며 “확산중인 기업과 기관의 정품 SW 사용 의식도 한 몫 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는 불법복제 SW사용은 단속과 계몽 이전에 사용자들에게 던져진 몫이라고 강조한다. 정부가 모든 업체와 개인을 단속할 수 없거니와 단속에 따른 수동적인 불법복제 근절보다 사용자 스스로가 불법복제 사용을 자제하는 의식수준 제고밖에는 없다는 설명했다.
실제로 ‘정품 사용’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이를 실천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온라인 게임 포털 ‘피망’과 ‘세이클럽’ 등을 운영하는 네오위즈는 국내외 SW저작권사들로부터 100% 정품 SW만 사용하고 있는 기업으로 첫손에 꼽히는 기업이다. 씨엔드에스마이크로웨이브(대표 이홍배)와 부동산114(대표 이상영) 역시 정품SW사용 모범기업으로 손꼽힌다.
김규성 SPC 부회장은 “대표적인 온라인 사업자가 정품 SW를 100% 사용하는 것은 SW업계에 반가운 일”이라며 “향후 SPC는 불법SW 단속보다 이같은 모범 기업을 발굴, 정품 SW 사용자 문화를 확산해 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SW도 자산이다
일부 중소기업들이 소프트웨어(SW) 불법복제 단속기간만 되면 업무마비를 겪을 정도로 이에 대한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큰 문제로 지적돼 왔다. 무형의 자산인데도 평소 점검하지 않아 사용하는 제품이 정품인지 아닌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직원들이 별도 개인용으로 사용하는 SW에 어떤 것이 있는지 몰라 불법복제 단속 당시 기업에서 추가 자금이 내야 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아직도 많은 기업이 SW를 공짜로 사용하다 법적 규제 후에 비로소 돈을 주고 구입하는 물품으로 취급하는 관행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SW가 기업 자산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SW 자산관리가 기업 생산성 향상과 총소유비용(TCO) 절감을 가져온다는 것이 확인되면서부터다. 가트너그룹 조사에 따르면 SW가 전체 정보기술에서 차지하는 비용은 약 25%에 이르지만 관리에 드는 비용은 다른 정보기술에 비해 매우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SW를 제대로 관리했을 때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전체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기업의 SW자산관리 책임은 법적으로도 규정돼 있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제50조에 따르면 업무상 불법복제에 따른 법적 책임을 개인사용자는 물론이고 그가 속한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에게도 지우고 있다. 이것은 직원의 개인 불법복제가 기업 이익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개념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결국 기업은 개인이 사용하는 SW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법적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책임을 갖게 됐다. 지난 2003년 10월부터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에 SW 단속권한이 포함돼 불법복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처벌 비용도 만만치 않게 증가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업이 SW 자산관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그 만큼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SW도 무형이지만 하나의 자산으로 인정받아야 할 때가 됐다”고 진단했다.
◆인터뷰-김규성 SPC부회장
“새롬·큰사람 등 벤처 1세대가 허무하게 사라진 것도 지적재산권을 지키지 못해서다. 한글과컴퓨터·안철수연구소 등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보호가 우선시돼야 한다.”
김규성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 부회장은 “SW는 다른 제품과 달리 무형이라 여러 방식을 통해 불법으로 내려받아 쓸 수 있다”면서 “이러한 관행이 SW산업을 피폐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불법복제를 SW산업의 성장을 절대적으로 막는 가장 큰 저해 요인이면서 동시에 이제는 IT경쟁력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한 보고서가 한국의 SW불법복제율을 10%만 낮추면 3조원에 달하는 GDP 추가 상승과 2만여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전망했을 정도다.
그는 한 시장조사기관 자료를 인용, “지난해 한국 SW불법복제율은 46%에 이른다”며, 이는 일본 28%, 미국 21%의 두 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평균인 35%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일부 통계 산정방식에 이견이 있겠지만 한국의 IT산업이 세계 최강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부끄러운 통계수치”라고 밝힌 그는 다행스럽게도 점차 불법복제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 희망을 걸었다. 기업들의 정품SW 사용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고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 부회장은 “법적인 강제력도 중요하지만 SW를 어떻게 잘 사용하고 관리할지가 더욱 중요하다”면서 “앞으로 SPC도 이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SPC가 SW를 기업 자산으로 인지시키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올해를 ‘Safe Zone in SPC’로 선포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단속, 처벌의 규제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사회인식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미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05년 SW 불법복제율 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