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만여개 PC방을 대표하는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IPCA)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열린 정기총회에서 박광식 회장에 대한 불심임안이 통과되면서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박회장측과 회장직에서 물러나라는 반대측의 대립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걷잡을 수없이 확산되고 있는 IPCA 사대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긴급 진단해 본다.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이하 인문협)의 파국은 지난달 31일 KT 연수원에서 실시된 정기총회에서 시작됐다. 정기총회가 실시된 이날 박 회장이 ‘중간평가를 통해 진퇴를 결정하겠다’는 공약 이행을 거부하면서 과격한 언성이 오가기 시작했고 결국 박 회장은 총회 진행을 거부, 총회장을 빠져나갔다.
# 중간평가 공약이 문제의 발단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총회에 참석했던 대의원 310(위임 77명 포함)명이 박 회장의 해임안건을 긴급발의, 투표를 진행해 찬성 131표, 반대 3표, 기권 1표로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후 대의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진우·이하 비대위)를 구성하며 협회장악에 나섰다.
그러나 박회장측은 이날 실시된 투표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박회장 본인이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가 실시됐으며 310명이 참석했지만 135명만 투표를 했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양측의 입장이 팽배해진 상태에서 급기야 지난 6일 비대위측은 협회 사무실을 무력으로 점거, 이사회를 개최해 임시회장으로 김진우 위원장을 선임했고 박 회장측도 이에 뒤질세라 부산서 이사회를 따로 열어 비대위 몇 명을 이사회 및 대의원직에서 사퇴시키는 안을 통과시켜 파국 양상을 띄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협회 게시판 봉쇄 등이 발생하며 회원사들은 큰 불편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비대위측은 협회의 파국의 원인이 박 회장의 공약사항인 ‘중간평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박 회장측은 비대위에서 무리한 요구를 해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명분에 불과할 뿐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관련 업계는 협회 내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갈등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면서 결국 사태를 증폭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멀티문화협회와 플라자협회 2곳이 합쳐지면서 양협회 회원들 간 알력싸움이 시작됐고 이를 초기에 무마하지 못함으로써 갈등이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또 협회가 온라인게임 개발사들과 밀실담합을 하고 난후 일방적인 공지를 하거나 공동구매시 협회가 따로 뒷돈을 챙긴다는 의혹과 구설수가 쉴새없이 발생하면서 결국 회원들이 협회에 등을 돌린 것도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협회가 회원들의 권익에 힘쓰기 보다는 알력싸움의 온상지가 되면서 협회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결국 이번 기회를 통해 ‘협회를 엎어버리고 다시 세우자’라는 여론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회원들의 불만이 결국 이번 사태를 낳게 된 것으로 본다”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향후 협회의 앞날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사태해결 실마리가 안 보인다
사태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비화되면서 양측이 중간에서 타협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양측은 현재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철도처럼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주장을 제기하고 있어 수습이 쉽지 않은 때문이다. 양측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정공방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미 이를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대위측은 법정공방을 준비함과 동시에 우선 협회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상반기 내에 이사회를 개최, 새로운 회장을 선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대해 박 회장측은 법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이사회 개최 자체를 무산시킨다는 계획이다. 법정공방이 진행되면 결과에 상관없이 새로운 PC방 관련 협회가 출범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진우 임시회장은 “법정공방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새로운 협회 출범은 지켜봐야 알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양측의 대립에 대해 회원인 PC업주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협회 한
회원사는 “최근 PC방에 칼바람이 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협회가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2001년 한국인터넷멀티문화협회와 한국인터넷플라자협회가 의기투합해 통합했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발등의 불’부터 꺼야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협회 소속 회원들이라는 점을 박 회장측이나 비대위측이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현재 협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사행성 게임 ‘바카라’로 인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하루빨리 제고시켜야 하며 정부가 내세운 강력한 규제책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한다거나 회원들 간의 출혈경쟁으로 갈수록 악화되고 있은 수익 등을 방치해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PC방업주는 “회원들이 바라는 것은 생계를 책임져줄 협회지 ‘밥그릇 싸움’을 하는 협회는 아니다”며 “지금 같은 모습이 계속될 경우 회원들이 협회에 등을 돌리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협회에 관심을 보이고 참여하는 회원들이 등을 돌릴 경우 협회는 유명무실한 이권단체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또다른 PC방 업주는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협회를 살려야 한다는 대 명분에 합의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협회를 이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알력싸움으로 인해 정작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을 뒤로 미뤄 놓으면 더이상 회원들이 협회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안희찬기자 chani7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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