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만난 세상]서민호 텔레칩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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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호 텔레칩스 사장은 팹리스 업계 CEO 중 가장 만나기 힘든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유는 한 가지. 국내에 있는 시간보다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1년간 비행기 마일리지만 30만 마일이 넘는다.

 서 사장이 해외에서 하는 일은 텔레칩스 5년 후의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다. 계약 추진 등 특정 사안에 대한 영업을 하기 위해 나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시장을 조사하고 사람을 만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함이다.

 서 사장이 이렇듯 마음 놓고(?) 신사업을 준비하는 데 전력할 수 있는 이면에는 그 나름의 철학이 존재한다. 그가 사업을 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숫자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다. 당장의 매출과 이익에만 집착했다면 새로운 아이템에 도전하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지금의 성장도 있을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 사장의 기획은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소부품 업체로서는 갖기 힘든 생각이지만 텔레칩스의 역사가 이것이 성공 비결이었음을 말해준다.

 텔레칩스의 첫 사업 품목이었던 발신자번호표시(CID) 서비스용 칩도 서비스 도입 이전에 내놓았으며, USB 연결장치를 통해 MP3를 카오디오에서 들을 수 있도록 한 칩도 최초로 개발했다. 지금은 이 칩이 사실상 표준이 됐다.

 또 텔레칩스의 MP3칩은 세계 처음으로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디지털저작권관리(DRM) 인증을 받아, 정액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텔레칩스의 칩을 반드시 장착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으로 99년 창업한 이후 성장가도를 달려 올해에는 매출 10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에는 MP3와 DAB를 모두 지원하는 토털 솔루션을 내놓아 유럽 수출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서 사장은 이 제품이 향후 MP3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제품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며, 이러한 흐름이 국내 팹리스 업체의 존재이유라고 생각했다.

 서 사장은 “내가 할 일은 바로 5년 후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며,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장 먼저 내놓을 준비를 하는 것”이라며 “지금 당장 매출과 같은 숫자에 연연하다가 기존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면 가격만 낮추는 꼴이 돼 오히려 숫자에 발목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임직원에게 하는 이야기도 늘 똑같다. 대기업만큼의 급여를 보장하고 있지만 월급봉투에 찍힌 숫자나 실적에 매달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동료애와 보람 등 회사에서 얻어야 할 것은 숫자 이외에 무형의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마인드 때문인지 유학과 같은 개인 신상 문제를 제외하곤 텔레칩스에 들어왔다가 그만둔 직원이 없다. 이러한 부분은 서 사장이 텔레칩스의 장래성보다도 더 자신있게 밝히는 대목이다.

 서 사장은 또 출장길에 오른다. 미국·중국·대만·유럽 등 도착지는 종잡을 수 없다. 출장길에 오르는 서 사장의 올해 목표는 역시 ‘매출 얼마를 달성하겠다’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또 만들어 가겠다’이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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