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플린 총장 `중도하차` 의미와 파장

 지난 2개월간 뜨거운 논란의 진앙지였던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의 연임 여부가 ‘불가’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28일 서울 메리어트호텔서 열린 KAIST 이사회에서 이사들은 갑론을박 끝에 러플린 총장의 연임에 반대 의견을 최종 결의, 총장 연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대신 러플린 총장은 명예직이란 선물을 받아 앞으로 KAIST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이날 러플린 총장이 입장 표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사회의 의견을 받아 들이기까지는 KAIST 부총장과 처장급의 설득이 주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AIST와 이사회는 물론 러플린의 국내 유치에 공을 들였던 과기부도 러플린 총장이 연임에 집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부담은 덜게 됐다.

 ◇이사회, 총장 진퇴 문제 장시간 논의=오후 5시 30분부터 비공개로 열린 이날 이사회에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인지 오랜 시간 진행됐다. 관변이사 5명과 민간이사 8명 등 총 15명 가운데 13명이 참석, 업정평가위원회의 설명을 듣고 진퇴문제를 본격 논의했다.

 러플린 총장은 자신의 진퇴에 관한 안건이 상정된 탓인지 8호 안건이 처리될 때까지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자리를 비켜 달라는 이사회 측의 요청을 받고 퇴장했다.

 과학기술부 박항식 국장은 “이사회에 사전 교감없이 투명하게 결정해 달라고 했었다”며 “교수협의회 측과 러플린 측이 이번 이사회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KAIST측의 한 교수는 “409명의 교수 중 40명은 그래도 러플린 총장에 기대를 걸었다”며 “외부적으로 드러난 것만 놓고 평가할 게 아니라 그가 제대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여건 조성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퇴진을 요구했던 게 너무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러플린 총장이 남긴 것=러플린 총장에 대한 업적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비록 러플린 총장이 △한국 및 KAIST 비하 발언 △행정 경험 부족 △비전제시와 재원확보 미흡 △ 리더십 부재와 독선 △총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도덕성 결여 △국제화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낙마했지만 KAIST 이미지 제고와 해외 행사 참석, 국내 과학기술 대중화에 기여한 점은 평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러플린 총장은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 예산으로 1000억원을 확보한데다 자동차기술대학원, 금융전문대학원, 정보미디어대학원 등을 유치, 개원하는 등 성과를 올렸다. 특히 KAIST의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국회 과기정위의 한 의원은 KAIST총장이 외국에서 KAIST와 한국 비하발언을 한 것에 분통을 터뜨리며 “경쟁국인 일본인 앞에서 ‘KAIST는 없다’고 언급한 총장을 게속 인정해야하는지 의심스럽다”며 앞으로 국회에서 이문제를 따지겠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일단 러플린 총장이 스스로 연임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정리, 모양새가 갖춰 졌지만 지난 2개월간 교수협의회와 총장간 내홍으로 인해 양측이 큰 상처를 입은데다 그동안 논란을 일으켰던 KAIST의 사립화 및 종합대학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차기 총장 선출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KAIST 교수협의회는 지난 2월 22일 전체 교수협 총회를 열고 차기 총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추천위원 7명을 선정했다. 추천위원회는 예정대로 향후 차기총장 후보 공고를 통해 후보 1∼2명 정도를 가려 뽑은 뒤 교수협의회 이름으로 이사회에 추천할 예정이다. 총장 후보 선정은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그러나 현재 총장 교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KAIST 교수협의회의 파워가 막강해지면서 발언권이 세져 자칫 차기 총장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KAIST는 중구난방식 교수진의 목소리만 있고 총장의 리더십은 실종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KAIST 관계자는 “이번 사태도 교수 개인보다는 KAIST를 위한 일이었던 만큼 힘을 모아 슬기롭게 극복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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