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재미 항공우주 과학자 정재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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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박사와 아내 노정숙씨가 다정히 손을 잡고 있다.

우주 공간에 한국인의 혼을 심는 사람이 있다. 지난 7월 미항공우주국(NASA)이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재미 항공우주 과학자 정재훈 박사(58)가 장바로 그다. 그는 우주개척 분야 선진국인 미국에서 한국인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 있다.

‘슈퍼맨’(테이코 창업주인 찰스 테일러가 남보다 10배 이상 성과를 낸다고 붙여준 별명)으로도 불리는 정 박사는 지난 7월 디스커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우주왕복선 콜롬비아 호의 폭발참사로 망가진 미국의 자존심을 되찾아준 인물이다.

◇미국 자존심 찾아줘=지난 2000년부터 우주기술 전문업체 ‘테이코 우주개발’의 CEO를 맡고 있는 정 박사에 대한 NASA의 의존과 신뢰는 절대적이다. NASA는 원래 지난 5월에 디스커버리호를 발사할 예정이었으나 정 박사가 개발한 결빙방지 가열 장치를 장착하기 위해 막대한 추가 유지비용에도 불구하고 발사시기를 2개월 연기하기도 했다.

지난 2003년 콜롬비아호의 참사 원인이 외부연료탱크의 얼음에 의한 날개 균열로 판명나자 테이코우주개발의 정 박사는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며 NASA의 문을 끈질기게 두들겼다.

“처음엔 모두 외면했습니다. 동양인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역시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결국 NASA에 우주왕복선 외부연료탱크를 공급하는 록히드 마틴으로부터 채택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제3의 대안으로 등록시키겠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정 박사는 결국 0.1㎜ 두께의 유연막과 단열막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응용해 지난 2003년 12월 우주 왕복선용 결빙방지 가열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NASA는 9개월동안 아무런 응답도 주지 않았다.

“회사 재정 상태를 걱정하며 애를 태우던 중 지난해 9월 최종 결론이 났습니다. 채택이 유력시 됐던 제1, 2안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시연을 위한 장비를 설치하고 실험하는 11시간 동안은 그야말로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지난해엔 화성 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에 영하 200℃의 극저온에서도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신경조직과 1562종의 열 장치를 장착시키기도 했다.

◇5살 때 자동차 설계=원래 정 박사는 어릴때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았다. 황해도가 고향인 정 박사는 6.25 피난 길에 오른 5살 때에 자전거의 원리를 응용해 조잡한 형태지만 자동차를 설계해 주변을 놀라게 한다. 초등학교 때는 로봇을 제작하기도 했다.

정 박사는 “어릴때는 원자력공학도가 되어 인류 복지를 위해 봉사하는 게 꿈이었다”며 “그러나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지 결국 서울대 금속공학과로 진학하게 됐고, 대한전선과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평범한 셀러리맨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끼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대학 미팅에서 처음 만난 오드리 햅번(결혼한 지 3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정 박사는 아내 노정숙씨를 이렇게 소개한다)과의 결혼이 결국은 미국행을 결심한 동기가 됐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다=“4000달러를 들고 미국에 갔는데,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유일한 버팀목이라고는 아내의 지원과 신앙의 힘 밖에 없었습니다.”

입에 풀칠할 요량으로 정 박사가 처음 잡은 직장이 우주공학 온도측정 센서와 발열장치를 제조업체인 테이코 우주개발이었다.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남들보다 10배는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제도사로 일했는데 하루 열 장씩 그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들은 하루 한 장 그리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당시 테이코 우주개발 창업주인 찰스 테일러로부터 성실성을 인정받은 정 박사는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캘리포니아 주립 롱비치대 공학 석사와 캘리포니아 어바인대 우주 열복사 전공 박사학위를 따기도 했다. 지난 2000년엔 드디어 테이코 우주개발 대표직을 맡게 된다. 말단에서 CEO로 성공한 것이다.

“CEO로서 기업에 해주고 싶은 말은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클린 컷(Clean Cut)’경영과 ‘팀워크’의 마인드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으로 우주를 가슴에 품는다면 못해낼 것이 없을 것입니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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