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R&D 현장을 가다](2)국가 R&D예산 효율성 키우는 기술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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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 5월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개최한 ‘국제R&D평가 심포지엄’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정부 R&D과제의 사업화 비율

“정부 연구개발(R&D)사업자 선정결과를 자세히 보면 기업의 매출액, 현금 보유액, 인력 등이 상당부문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 사업에 수차례 지원했다는 모 벤처업체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의 말처럼 상당수 기술 벤처업체들은 우리나라의 R&D평가시스템에 대해 불만이 높다. 물론 기업 규모가 크고 매출이 많을수록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신생 영세 벤처기업들에게는 억울하기 그지없다고 하소연이다.

 정부가 R&D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한다는 것은 곧 ‘제대로 된 기술’에 자금을 투입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기술을 찾기 위해서는 기술평가가 지금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기술평가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기술평가에 대한 인식 전환 △충분한 인력 △예산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술평가 제대로 하라=기술평가 결과가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평가자에게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관행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국내 기술평가기관 여러곳의 외부 평가원으로 활동하는 한 관계자는 “기술평가서 한 장을 주면서 3시간 동안 평가를 부탁한다”며 실태를 꼬집었다. 이 관계자의 지적처럼 국내 기술평가기관의 평가가 매우 형식적이며 부실하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옥석’을 가린다기보다는 ‘형식을 갖추고 괜찮아 보이는 기술’을 찾는 수준이다.

 실제로 해외의 유력 기술평가기관들은 길게는 반년 이상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소위 될만한 기술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체계도 시급하다. 평가가 시간에 쫓기다 보니 ‘기술은 허접해도 기획만 잘하면 정부사업을 딸 수 있다’는 빈말이 나올 정도다.

 오해석 경원대 부총장은 “기술을 평가할 때 무엇보다 상품성이 있는지 또한 시장성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보아야 한다”며 “논문으로는 좋은데 상품성이 떨어지는 기술을 지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단정했다.

 ◇전문 인력풀을 확보하라=기술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기술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당수 기술평가기관들은 자체 보유한 기술평가인력이 태부족인데다, 외부 기술평가인력 역시 대학교수 등 일부에 한정돼 있다. 이는 급변하는 기술 흐름을 쫓아가는데 한계를 보이며 자연스럽게 평가의 질이 떨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남용 숭실대 교수는 “기술이 워낙 다양하고 새로운 기술이 살아 움직이듯이 발전하는 만큼 이런 기술들을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다”며 “연구업무를 펼치지 않는 심사단을 통해 신기술의 옥석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구계와 학계 등의 인력을 평가에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단기적으로 대안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정부 예산 현실화도 필요=평가기관들도 평가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업계와 학계의 지적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특히 이 배경으로 예산의 부족을 꼽고 있다. 산업기술평가원에 따르면 평가에 소요되는 정부지원금이 미국의 국립과학재단, 오스트리아의 산업연구촉진기금 등은 각각 5%와 7.3%인데 반해 국내의 평가기관들 대부분은 채 2%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부 평가자들의 수당도 적어 평가의 깊이가 얕아지고 있으며 또한 적은 예산으로 자체인력의 경우 과다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국내의 경우 기술보증기금이 전문인력 1인당 연간 평균 평가건수가 310건(2004년 기준)에 그치고 있다.

 우창화 산업기술평가원 신성장기술본부장은 “과제 당락위주의 평가에서 중장기 기술기획과 고도화된 평가 그리고 성과의 피드백 등 전주기적 기술평가시스템을 위해서는 사업비 평가관리 예산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인터뷰-김수원 고려대 공대학장

 “자체적인 평가능력 향상을 위한 꾸준한 투자가 절실합니다.”

 김수원 고려대 공대학장(53)은 한국 연구개발(R&D)평가기관들의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해 ‘투자’라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기술평가의 역사가 짧아 외부 전문가들의 기술적 능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평가에 소요되는 인력과 시간 등이 크게 부족하다”며 국내 R&D평가기관들의 노하우 및 인프라 부족을 투자를 통해 극복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정부 정책과제 등에 대해 오랫동안 평가업무를 펼쳐온 그는 평가 전반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 필요성도 밝혔다.

“평가를 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자연스럽게 평가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의 유력 평가기관들은 충분한 평가인력과 노하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에서 길게는 9개월까지 평가를 하는 것을 보면 암시하는 바가 큽니다.”

 정부와 평가기관 차원에서의 변신노력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평가 관리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 단기적으로 평가관련 예산의 대폭적 확충을 통한 심도 있고 세밀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평가기관 인력의 자질향상을 위한 교육투자와 관리기관의 책임성 강화를 통한 능력배양이 요구됩니다.”

 최근 정부차원에서 추진 움직임이 있는 R&D평가인력 DB화를 통한 활용에 대해서는 매우 필요하다고 입장을 소개했다.

 “정부로서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체적으로 미흡한 능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유명 전문가 DB뿐 아니라, 교포 전문가의 활용도 필요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국립과학재단(NSF)의 경우 전문가 DB를 30만 명이나 확보해 이들을 평가 및 자문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서 “국내 평가기관들도 정부에 의존만 할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인력 배양에 힘써야 하고 외부 우수 인력의 DB구축, 외부 전문가의 2∼3년 정도의 활용 등 보다 적극적인 선진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학장은 그러나 R&D평가기관들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국내 여러 상황과 여건을 고려해 구조조정을 검토해야 합니다. 특히 무엇보다 R&D관련 정부 부처의 조정 없이는 구조조정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학장은 “외국의 기술 평가원들은 장기간에 걸쳐 책임감 있고 심도 있는 평가를 한다”며 “국내기관들도 독립성을 유지시키되 평가관리보다는 연구기획 및 연구결과의 확산 등에 보다 많은 노력이 요구되며 또한 성과분석에도 관심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파악 및 감독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술사업화 현황

 최근 기술평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배경에는 ‘기술사업화’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즉 산·학·연에서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기술로 바꿨으나 이것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사업화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기술사업화는 매우 부진한 실정이다. 한국기술거래소가 최근 발간한 ‘기술이전사업화 백서’에 따르면 정부 R&D과제의 사업화 성공률은 대체로 30∼40% 수준. 지난 2002년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자원부의 산업기반기술개발사업(1987∼1997년)은 2399건 가운데 768건이 사업화에 성공, 사업화율이 32%를 기록했다. 그러나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의 특정연구개발사업(1982∼1997년)과 정보통신연구개발사업(1993∼1997년)은 각각 13.0%와 17.0%의 성공률에 그쳤다.

 민간부문의 사업화 현황은 기업연구소 과제수행 사업화 비율을 보면 최초 제안과제를 기준으로 37.9%가 착수해 25.2% 정도가 개발에 성공했으며 이 가운데 최종 사업화까지 가는 경우는 15.7% 정도다. 이를 연구단계별로 보면 개발수행과제 중 개발성공 비율은 66.3%, 개발성공과제 중 사업화성공 비율은 62.4%로 나타났다.

 기업규모별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대기업의 경우 개발에 착수한 후 사업화에 성공한 비율은 16.1%였으며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각각 15.0%와 16.3%였다. 개발성공비율이 23.8%∼28.5%(대기업 28.5%, 중소기업 23.8%, 벤처기업 25.4%)인 것을 감안한다면 절반 정도가 사업화에 성공한 것이다. 특허권과 실용신안권의 사업화성공률은 2004년 기준으로 특허권의 경우 19.9%였으며 실용신안권은 27.9%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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