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의 액션은 상당부분 만들어진 이미지다. 무협소설에 나오는 무공은 물론이고 무협영화가 보여주는 액션도 무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다. 무협게임을 만들거나, 무협영화를 만드는 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점이 이것이다.
즉, 무술을 연구하려 하기보다 차라리 어떤 이미지를 연출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중국무협영화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이 부분을 생각해보자.
중국 최초의 영화는 1908년 북경에서 경극 공연을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최초의 무협영화는 1928년 만들어진 ‘화소홍련사’이고, 이것은 근대 무협작가 평강불초생의 ‘강호기협전’ 중 한 부분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이후 중국에서는 중국인은 물론 동남아시아에 널리 퍼져있던 화교들을 대상으로 한 통속적인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그중 상당수는 무협물이었다.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중국본토의 영화는 체제선전을 위한 도구로 변해 버린다. 무협영화와 같은 상업적인 영화들은 그래서 홍콩으로 무대를 옮긴다. 그러나 이때까지 무협영화의 액션은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의 액션을 흉내낸 것에 불과했다.
무사들의 빠른 움직임과 칼질, 베고 지나가면 죽어 넘어지는 것 등등 일본의 B급 영화, 소위 찬바라 영화라 부르는 시대물의 액션을 그대로 흉내내었던 것이다. 이런 액션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것은 중국무협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금전이었다.호금전(胡金銓, 1931~1997)은 1966년 ‘대취협(大醉俠)’으로 첫 무협영화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시도된 액션은 경극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경극배우들의 무용에 가까운 화려한 액션, 그리고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중국무술의 이미지로 사용했던 것이다.
호금전은 실제로는 무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무협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중국전통문화의 기예면 되는 것이지 무술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으로써 그의 무협영화는 단순한 액션활극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문화가 표현되는 장이고, 동양의 정신이 육체를 통해 표현되는 공간이 되었다.
1971년 발표된 ‘협녀(俠女)’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제28회 칸영화제에서 고등기술 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호금전은 이 영화를 통해 경극의 전통을 영화 속에 받아들여 고전적인 미학의 전통을 잇고자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으로 또 하나 유명한 것은 1967년작인 ‘용문객잔’이다. 이 작품은 이후 이혜민에 의해 ‘신용문객잔’으로 리바이벌 된다.
중국무협영화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인물은 장철(張徹, 1923~2002) 감독이다. 호금전이 무협영화에 철학을 불어넣었다면 장철은 무협영화의 미학을 만들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60~70년대에 주로 활동했는데 ‘독비도(외팔이 검객)’, ‘13인의 무사’, ‘철수무정’, ‘금연자(한국에서는 ‘심야의 결투’라는 제목으로 개봉)’, ‘소림오조’ 등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배우로는 외팔이 검객의 왕우, 소림사 연작의 유가량, 그리고 강대위와 적룡이 있다.그는 무협의 세계가 보여주는 폭력의 미학에 경도되었다고 한다. 그는 비장미야 말로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거듭되는 결투와 결투 속에 피와 폭력이 난무하고, 그 사투의 과정은 슬로우 모션으로 느리게 비추어진다. 그리고는 끝내 주인공이 죽거나 어딘가로 떠나감으로써 끝나는 것이다.
그는 검을 절단의 도구라는 위치로 돌려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이전까지 영화에서 검은 살인의 도구였을지는 몰라도 절단의 도구는 아니었다. 그러나 장철은 검이 휘둘러져 잘린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묘사함으로써 검이 가진 본래의 이미지를 돌려주었다. 호금전의 액션이 무용이고 문화라면 장철의 액션은 폭력이고 미학이었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시대는 이소룡의 등장으로 끝나고 만다. 이소룡의 사실적인 액션은 관객에게 그 이전까지의 무협영화가 보여주었던 과장과 폭력을 뛰어넘는 충격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한편으로 무협영화는 대규모의 세트가 필요하고 특수촬영 기술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이제 무협은 무술영화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이소룡의 사실적인 무술영화, 성룡, 홍금보, 원표 트리오의 아크로바틱한, 그리고 코믹한 무술영화, 이연걸의 화려한 무술영화의 시대가 차례로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제 2000년대가 되었다.
2000년대를 전후하여 주목해 볼만한 무협영화, 무협액션으로 필자는 ‘동방불패’, ‘동사서독’, ‘서극의 칼’, ‘와호장룡’, ‘촉산’, ‘영웅’을 꼽는다.
‘동방불패’의 원작이 된 김용의 ‘소오강호’는 김용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만무협 풍의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동방불패’에 등장한 액션도 대만무협, 즉 한국에 가장 익숙한 무협세계에 등장하는 액션이다. 여기에는 무공이 있다.
임아행의 흡성대법, 동방불패의 바늘던지기, 영호충의 독고구검은 SFX기술이 구현한 전형적인 무협액션이다. 정말 무협지 다운 무협지의 액션을 구현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모범으로 하면 될 것이다.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은 시로 쓴 무협이고, 영화로 쓴 시다. 무협의 멋이 가장 멋지게, 예술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그에 반해 ‘서극의 칼’은 무협의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동사서독’에서 표현된 그런 멋진 강호란 있을 수 없다고 서극은 말하고 있다. 강호란 이렇게 더럽고, 치사하고, 별 볼 일 없는 곳이고, 무림인이란 그런 진흙탕에 뒹구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영화 내내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안 감독은 미국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각에는 서양인이 동양을 보는 듯한 낯선 느낌이 있다. 그건 날 때부터 동양에 살아서 익숙해져 버린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동양 무술에 대한 그런 낯선 시각이 잘 드러난 작품은 사실 ‘와호장룡’보다 그의 데뷔작인 ‘쿵후선생’ 같지만 ‘와호장룡’에도 다시 본 무협영화, 그리고 무협액션이라는 부분이 충분히 잘 드러나 있다.
‘촉산’은 이미 여러 번 말했듯이 가장 과장도가 심한 무협설정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의의가 있다. ‘영웅’은 중국 본토 출신의 영화인이자 제5세대 감독그룹의 선두주자인 장
예모 감독이 재해석한 무협, 그리고 액션의 세계라는 점에서 참고할만 하다.
예전에는 중국무술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특히 동영상 같은 건 정말 구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젠 중국에서 제작된 시디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무술 종류별로 백과사전처럼 구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게 무협액션 표현의 한 자료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무협 액션은 무술이 아니라 만들어진 이미지니까. 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콘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동방불패.
◇ 금연자 포스터. 한국에는 심야의 결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개봉되었던 영화 독비도의 한 장면.
◇ 영화 협녀. 영화제목을 보라.
◇ 쿵푸 허슬에 출연한 정패패. 대취협의 여주인공이었다. 이안은 와호장룡이 대취협 의오마쥬라고 고백하고 와호장룡의 푸른 여우 역에 정패패를 출연시켰다.
◇ 와호장룡의 한 장면.
◇ 영화 영웅의 한 장면. 여기 이어지는 조문탁과 이연걸의 대결은 무협영화 사상 가장 멋진 대결신으로 꼽힐만 하다.
◇ 서극의 칼.
<좌백(佐栢) jwabk@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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