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황태자`에 열광하나

말 그대로 ‘황태자 신드롬’이다. 요즘 TV 속에는 돈 많고 잘생기고 몸매 좋고 거기에다 자상하기까지 한 완벽한 남자들이 등장한다. TV 속 ‘황태자’들과 비교해 내 애인 혹은 내 남편은 왜 이것밖에 안되나 한숨짓는 여성들도 늘어만 간다고. 얼마 전에는 모 인터넷회사에서 이색 설문조사까지 펼쳤다. ‘사랑하는 남친이 있다. 그런데 재벌 2세가 청혼해 오면?’ 이라는 질문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58%의 여성들이 ‘사람만 괜찮다면 재벌 2세를 선택한다’고 응답했는데…. 뭇 여성을 설레게 하는 ‘황태자 신드롬’을 따라가 보자.<편집자 주> 글_이지은 / 라이터스 매체취재팀

지금 드라마는 ‘황태자 천국’

“어머! 주인공 너무 멋있지 않아? 도대체, 자기는 뭐야?”

결혼 3년차 김 대리에게 하루 중 가장 무서운 시간은 밤 10시부터 11시다. 매일 TV만 켰다 하면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 아내를 설레게 하는 것까진 좋다. 그러나 이내 현실 속으로 돌아온 아내한테 “자기는 왜 그래?”“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준다더니”등 바가지를 긁히다 보니 드라마 할 시간이 가까워오면 슬슬 무서워진다는 것. 그래서 그 시간만 되면 “어, 일 할게 있네”하며 슬그머니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그것도 허락되지 않으면 신문에 고개를 박은 채 TV엔 일절시선을 두지 않는다.

이처럼 최근 들어 TV 속에 분주히 등장하는 ‘황태자’ 때문에, 김 대리처럼 기를 못 펴고 사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 드라마는 말 그대로 ‘황태자 천국’이다. 몇해 전 종영된 <불새>의 정민(에릭), <발리에서 생긴 일>의 재민(조인성) 등이 멋진 황태자로 기억되고 있으며, 역시 인기리에 종영된 <파리의 연인>의 기주(박신양), 수혁(이동건), 현재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진헌(현빈)이 대표적 ‘황태자’로 떠올라 ‘황태자 신드롬’에 더욱 불을 붙이고 있다. 드라마마다 돈 많고 잘생기고 몸매 좋고 거기에다 자상하기까지 한 완벽한 남자들을 찾아볼 수 있다.

현실탈피·신분상승 대리만족 느껴

경제용어 중 수요공급의 원칙은 드라마시장에도 반영된다. 시청자가 원하니 황태자도 등장하는 법.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황태자’가 등장에는 드라마에 폭 빠져들고 있는 걸까?

“여주인공을 위해 멋진 옷을 사고 멋진 저녁을 먹고, 드라마 속 스토리에 푹 빠져있다 보면 돈 걱정, 일 걱정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죠. 순정만화책을 읽는 것처럼 설레고 그 순간만큼은 제가 드라마 여주인공이 된 것처럼 즐겁고 행복해져요.”

직장인 허영미(27)씨와 마찬가지로 주부 고희숙(32)씨도 황태자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현실 속 걱정들을 잊을 수 있어 좋다고 대답했다.

“저도 예전에는 왕자나 신데렐라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너무 바르게(?) 현실을 그려내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제 기분도 지지리 궁상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안 그래도 살기가 팍팍한데, 드라마에서라도 현실탈피·신분상승의 대리만족을 느껴보자는 것이 ‘황태자 신드롬’에 편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황태자 신드롬’을 곱지 않는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현실을 잊고 잠시잠깐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은 좋다. 그러나 로또 당첨 확률만큼이나 현실성이 낮은 드라마 속 내용에 빠져들어 ‘나도 어쩌면?’이라는 허황한 꿈을꾸면서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주부 이미선(29) 씨는 조금 다른 의견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봤으면 생각 안 하는 여자들이 어디 있겠어요. 또 실제로 그런 남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여자들이 있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재미있는 동화책 한편을 읽는 느낌으로 그런 드라마를 즐기는 거라 생각해요.”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른 ‘황태자 신드롬’은 우리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장기 경제불황 상황 하에서 시름하는 서민들을 이런 저런 걱정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도피처 혹은 휴식처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로또에 비유해도 좋다. 로또 당첨을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하거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마냥 허황한 꿈속에서 살며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주 가끔 로또를 사고 추첨일까지 작은 희망을 품으며 기다리는 서민들의 소박한 즐거움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품어보는 작은 희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드라마 속 ‘황태자’도 한동안 계속 나타나 미소를 던질 것이다.(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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