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견기업 `벤처사냥`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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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예상치 않았던 대기업도 수천억원의 자금을 유망 분야의 여러 업체 인수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벤처캐피털업계 한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대기업의 유망 벤처기업 투자 움직임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중견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기술거래 전문업체의 한 대표는 “코스닥에 올라가 있는 매출 2000억원 정도의 성공 벤처기업 가운데 몇 개 업체가 신사업 진출 일환으로 벤처기업 인수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중견기업들이 벤처 사냥에 나서는 데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블루오션’ 전략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사업을 오래 영위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다양한 ‘캐시카우’를 확보해야 하나 초기단계부터 밟아나가기보다는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유망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을 인수해 시간·비용·노력을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벤처 인수 움직임 얼마나 있나=벤처캐피털업계 및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움직임이 매우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과거에는 IT 위주의 대기업이 주류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철강·화학 음식료 등 비IT 굴뚝기업들이 벤처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기업 수개사와 벤처기업 인수에 대해 협의중이라는 모 벤처캐피털업계 고위 관계자는 “벤처캐피털리스트 등 벤처 전문가들을 영입해 신규사업팀을 구성하는 대기업이 의외로 많다”고 소개했다.

 ◇배경은 ‘블루오션’ 찾기=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달 초 국내 600대 기업이 올해 투자규모를 작년에 비해 20% 이상 늘릴 것이라는 조사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목적별 투자 증가율로 ‘타업종 진출’이 작년 동기에 비해 무려 237.5% 늘었다. 이 밖에 신제품 생산(31.7%), 연구개발(31.6%) 등 소위 전략적 투자가 유지보수(21.0%), 시설확장(22.1%) 등 과거 주를 이뤘던 대체투자에 비해 크게 높았다.

 국성호 전경련 상무는 “최근 대기업들이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은 신 수익모델 창출”이라며 “현금 여력은 충분한 데도 기존 투자에서는 돌파구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얼마나 성과로 이어질까=상당수 전문가는 이 같은 ‘입질’이 ‘실적’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강철웅 기술거래소 M&A팀장은 “현금흐름이 늘어나면서 대기업들이 벤처 인수에 꾸준히 나서고 있다”며 “그러나 대기업의 복잡한 의사구조, 벤처기업에 대한 낮은 평가, 검증된 벤처기업의 경우 피인수에 대한 부정적 시각 등으로 인해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공격적 움직임 △벤처기업의 인식 전환 △벤처캐피털의 자금회수를 위한 피인수 유도 등이 겹치면서 의외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모 벤처캐피털업계 관계자는 “벤처기업은 우수 기술이 있어도 막대한 자금 및 네트워크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싸이월드가 SK텔레콤에 인수된 후 크게 성공한 것처럼 대기업과 벤처 모두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