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객관리(CRM)업체인 씨씨미디어가 대만 IT업체에 인수합병됐다. 주식 맞교환을 통해 이뤄진 이번 합병은 규모 면에서는 34억원으로 작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국 회사가 국내 솔루션업체에 일부 투자한 사례는 있으나 이처럼 회사를 100% 인수한 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 벤처기업의 기술력이 해외에서 입증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영수 씨씨미디어 사장은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자체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인수합병 당시 큰 덕을 보았다”며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만큼 인수합병 이후에도 주도권을 갖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자체 기술력을 갖추고 있을 때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기업 가치도 높게 평가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컴퓨팅 분야에서는 마케팅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기술력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컴퓨팅업체는 기술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원천 기술 자체가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은 데다 다른 업종에 비해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급변하는 시장과 기술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이상은 유효할 것으로 보이는 ‘무어의 법칙’이 대표 사례다. 마이크로 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 법칙은 지난 65년부터 40년 동안 컴퓨팅 분야 업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는 키워드가 됐다.
국내 기업은 이런 변화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벌이고 있다. 시그마컴 주광현 사장은 “원천 기술 확보뿐 아니라 다양한 응용 기술 개발은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라면서 “당장 성과가 안 보인다고 해서 연구 개발에 게을리하면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며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해외에서 국내 기술이 인정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8월 제정된 IT분야 국제 표준 2334종 중 22종이 국내 기술 113건을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술의 표준 채택이 수적으로는 0.9%에 불과하지만 IT분야 핵심 기술인 동영상압축기술(MPEG), 평판디스플레이(FPD) 등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고 최근 채택 건수가 부쩍 늘어 국제 표준으로 제정 작업중인 기술도 83건(국제 표준 53종)에 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IT강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에 맞게 ‘인프라가 앞선 자’만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기술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드웨어 부문에서도 삼성전자·유니와이드 서버와 스토리지 기술력이 인정받고 있다. 주변기기 업체의 기술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국내 PC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는만큼 다른 나라보다 더욱 많은 기능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시그마컴은 그래픽과 TV수신카드를 개발한 업체인데 지난 98년 회사 설립 이후 외산 제품과 경쟁에서 국산 제품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모바일컴피아는 산업용 PDA 기업으로 이 회사가 자체 제품을 개발한 이후 외산업체가 장악하고 있던 바코드 스캐너 분야 시장 점유율을 바뀌고 있다. 태진인포텍이 3년여의 연구 기간을 거쳐 개발에 성공한 ‘젯 스피드’라는 제품의 초고속 데이터 기술은 일부 다국적 기업만이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다.
소프트웨어 업체도 기술력에 승부를 걸기는 마찬가지다. 하드웨어에 비해 응용 분야가 더욱 많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도 높다. 소프트웨어 업체는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준거 사이트가 많지 않고 회사 업력이 길지 않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핸디소프트·티맥스소프트 등 국내 대표 소프트웨어 기업이 별도의 연구개발 센터를 만들어 집중 투자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기존 벤처기업도 연구개발에 중점을 두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최근에는 이 같은 성과가 시장에서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핵심 기업용 소프트웨어인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분야에서 케이컴스와 알티베이스가 이미 시장을 장악했다. RDBMS 분야에서는 케이컴스가 오라클·IBM·사이베이스 등 쟁쟁한 외국업체와 경쟁을 벌이고, 알티베이스도 메인메모리 DBMS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기업애플리케이션통합(EAI) 부문에서는 메타빌드·모코코·미라콤아이앤씨·리얼웹 등 국내 업체가 오히려 외산에 비해 많은 사이트를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규모의 경제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여러 해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기술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일류 중견 기업의 성공조건’ 중 하나가 바로 개방형 연구개발이다. 대부분의 업체가 가격 경쟁에만 매달릴 때 일류 기업은 일찍부터 기술 개발에 초점을 둔다는 것. 경쟁사 대비 우위 수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자체 기술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기업이 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보고서는 컴퓨팅 업체가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있다.
이병희기자@전자신문, shake@
◆인터뷰-티맥스소프트 박대연 CTO
“벤처와 대기업의 역할이 나뉘어야 합니다. 두 곳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 우리 기업의 기술 경쟁력은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티맥스소프트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박대연 KAIST 교수는 “현실적으로 유연성 확보 등은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벤처는 원천 기술을 갖출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대기업은 투자가 많이 필요한 중장기적으로 오래 갈 수 있는 분야의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대표 인물. 지난 97년 창업해 지금까지 티맥스소프트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지휘했다. 2000년에 출시한 WAS 제품인 ‘제우스 1.0’의 시장 점유율이 2001년에 2%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30%까지 올라가 2003년에 이어 2년째 외산 업체를 물리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박 교수는 “국내 업체가 기술 개발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고 진단했다. 2000년 닷컴 붐 때문인지 기술보다는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아이디어)로 승부를 걸려는 곳이 아직도 있다는 것. 자체 기술력 확보 없이 아이디어만 갖고 1년 이내 승부를 보려는 습성은 결국 스스로도 무너지지만 시장까지도 흔들어 놓고 있다고 질책했다.
그는 국내 코스닥 상장업체 가운데 해외 업체와 겨룰 수 있는 기술력을 갖고 있는 곳이 얼마나 있는지 꼽아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 모델로만으로는 기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한만큼 기술력 확보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인내입니다. 지속적으로 기술 개발에 몰두하다 보면 길이 보입니다.” 박 교수는 DBMS를 4년 동안 개발한 경험을 소개했다. WAS 하나로도 만족할 수 있었지만 DBMS 분야에서도 4년 동안 꿋꿋하게 개발, 결국 올해 제품을 내놓고 금융권에 준거 사이트도 확보했다.
그는 97년에 창업해 2000년 초 투자를 받은 경험도 들려줬다. 비즈니스 모델만 갖고 1년 이내 투자받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조급하게 회사를 운영했다가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운용체계까지 개발하고 있는데 5년 후를 기대해 주세요. 세계에서 기술력을 갖춘 3대 기업 중 하나가 돼 있을 것입니다.”
티맥스소프트가 기술력에서 세계 ‘톱 10’에 있다고 자신하는 박 교수가 꿈꾸는 미래다.
많이 본 뉴스
-
1
“저녁 대신 먹으면 살 쭉쭉 빠진다”···장 건강·면역력까지 잡는 '이것' 정체는?
-
2
“라면 먹을떄 '이것' 같이 먹지 마세요”…혈관·뼈 동시에 망가뜨려
-
3
의사가 극찬한 '천연 위고비'…“계란 먹고 살찌는 건 불가능”
-
4
배달 3사, 이번엔 '시간제한 할인' 경쟁…신규 주문 전환율 높인다
-
5
현대차, '더 뉴 그랜저' 디자인 공개…“新기술 집약”
-
6
'HMM 부산 이전' 李대통령 “약속하면 지킨다…이재명은 했다”
-
7
中 BYD, 국내에 첫 하이브리드차 출시…전기차 이어 포트폴리오 다각화
-
8
삼성바이오 전면파업 이틀째…5일까지 총파업 강행
-
9
국내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 쇼룸 문 연다…로봇이 춤추고 커피도 내려
-
10
우리은행, 계정계 '리눅스 전환' 착수…코어 전산 구조 바꾼다
브랜드 뉴스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