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개성관광, 분단극복의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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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시범관광을 다녀왔다. 지난 1월 한국관광공사에서 발주한 ‘개성관광종합개발계획’을 7개월간 연구한 책임자로서 감개무량했다. 연구과제 수행을 위해 박연폭포를 제외하고는 이미 네 차례나 개성 현지를 방문한 바 있는 필자로서는 개성관광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한 모의실험이 계획대로 추진되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개성 시범관광은 당초 예상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우선 개성관광은 몇 가지 점에서 금강산 관광과 차별화를 이룬다. 우선 금강산 관광은 북한 주민의 실생활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측면에서 경치관광에 그쳤다. 그러나 개성관광은 40만명의 개성시민이 거주하고 있는 시내를 통과하고 체류하는 등 주민들의 생활을 그대로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는다.

 다음은 관광객의 목적에서 차이가 난다. 금강산은 단순히 북녘땅을 밟아 보는 차원에서 관광이 이루어졌지만 개성관광은 개성 및 인근 황해도 실향민이 절반 이상 참여하는 ‘고향방문’ 사업이었다. 60년 전 선죽교에서 찍은 사진을 가지고 와서 대조하는 노신사부터 초등학교 재학 시절 하교 후에는 으레 정몽주의 사당인 숭양서원 마당에서 고무줄과 공기놀이를 했다는 초로의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55년 만에 개성 고향땅을 디딘 갖가지 사연은 이산의 아픔을 절감케 하기에 충분했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남겨 두고 서울로 피난왔다는 할아버지는 고려민속박물관 마당에서 북측 허가를 받아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며 통곡하는 광경은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려웠다.

 개성관광은 종합관광지로서 다양한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우선 개성은 역사관광지 자격을 갖추고 있다. 개성은 500년 고려 도읍지로서 공민왕릉, 왕건릉, 박연폭포, 만월대 등 수많은 역사문화 유적이 있고 고려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다. 특히 1952년 10월 북측으로 완전히 넘어가 ‘신해방지구’가 되기 전까지 개성은 38도선 이남에 위치한 남측 지역이었다. 이에 따라 평양 등 여타 지역과 달리 미군의 폭격을 덜 받은 관계로 과거의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역사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다.

 둘째, 개성은 평화관광의 의미가 있다.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하자마자 5분여 만에 도착한 개성은 서울 광화문에서 75㎞ 지점에 위치한 북한의 최남단이다. 휴전이 임박한 1953년 남북은 한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개성 이남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다. 이제 개성지역은 역사의 상처를 다독거리며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최일선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셋째, 개성은 개성공업지구를 통해 산업관광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지역이다. 시범단지 2만8000평에 13개 업체의 북한 근로자 4000여명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이는 개성공단이 통일경제의 실험장으로 반듯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넷째, 개성은 평양 등 북한 전역으로 관광을 확대하는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 향후 숙박관광이 시작되면 해주·구월산·사리원 등 황해도 지역으로 관광범위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개성에서 평양까지는 160㎞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만큼 개성과 평양을 연계하는 관광상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성관광 초기부터 수익성을 확보하는 성공적인 대북사업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우선 현재 하루 최대 500명인 관광인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숙박관광이 불가피하다. 개성 및 황해도 실향민 10만명 이상이 개성관광에 참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숙박관광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숙박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고려민속여관과 자남산여관을 완전 가동해도 200명 이상이 투숙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첨단 관광시설인 가칭 ‘평화관광센터’를 개성공업지구 내에 건설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에서 제기된 통관·출입절차 번잡성이 개성관광에서도 재연되고 있으나 조기에 개선되어야 한다. 개성관광은 분단을 현장에서 극복하고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

◆남성욱(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namsung@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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