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구단에서 감독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없이 ‘우승’을 일궈내는 일이다. e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이런 면에서 GO(Greatest One)의 조규남(34) 감독은 최고 중의 최고다.
지난 6일 마재윤이 ‘우주배 MSL’ 우승컵을 차지하면서 그가 키워낸 메이저 대회 우승자만도 서지훈과 강민,박태민을 포함해 총 4명이다. 그가 이끄는 GO팀은 다른 팀은 한번도 이루기 어려운 단체전 우승도 무려 4차례나 차지했다. 한마디로 그는 11개 팀 가운데 가장 많은 우승을 일궈낸 ‘우승 제조기’다.
하지만 그에게는 말못할 고민이 많단다. 그 가운데서도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스폰서가 없다는 문제다.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을 한 특급 스타는 줄지어 나오는데 그에게 합당한 대우를 못해주다 보니 다른 팀으로 보내야 하는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늘 감수해야 했다. 강민이 그랬고, 올초에는 박태민과 전상욱을 이적시켜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더이상의 이적은 없다”고 단언을 한다. 팀의 위상에 걸맞는 스폰서를 반드시 구해서 선수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게 해주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그대로 묻어난 이야기다.
# 게임이 좋아 e스포츠에 투신
지난 98년 경희대 일어교육과(91학번)를 졸업한 조규남 감독이 프로게임단 감독으로 나선 것은 ‘프로슈머’라는 오프라인 게임대회 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자체팀을 꾸려본 것이 계기가 됐다. 2001년 가을, 이런 그를 알고 지내던 게임아이가 ‘이노츠’라는 게임단을 창단하면서 그에게 감독을 맡아줄 것을 제안해 온 것. 하지만 게임아이는 불과 6개월만에 게임단을 접어버렸고, 소속 선수들은 하루 아침에 갈 곳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에 조 감독이 2003년 4월 사비를 털어 게임단을 창단했다. 이 것이 바로 지금의 GO팀이다. “좋은 선수들이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는게 그 이유였다.
구로동 벤처빌딩에 58평 규모의 연습실을 마련하고 박태민과 강민,서지훈 등 소속이 없던 신예선수들을 속속 영입했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 월급은 생각지도 못하고 다만 마음 편하게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데 불과했음에도 연간 8000만원에 달하는 운영비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기획사를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오프라인 게임대회를 연결해 주거나 백화점과 PC방 이벤트 행사를 기획해 주는 등 돈 되는 일은 다 했다. 그렇지만 운영비는 항상 모자랐고, 한 때는 식당에 밥값도 제대로 못주는 등 어려움이 이어졌다.
“선수들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기 싫어서 혼자 끙끙 앓기도 했죠.” 당초 연습실을 마련할 때 유치키로 했던 5000만원 정도의 투자가 무산된 것이 그를 더욱 어렵게 했다.그래도 조 감독은 선수들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어려움은 자신의 몫으로 떠 안았다. 그렇지만 그는 “무슨 일을 해도 어려움은 따르기 마련이잖아요.내가 선택한 길이고 좋아서 하는 일이라 힘들지 않았어요”라며 여유있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시간이 지나자 그런 그의 힘을 덜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선수들이었다. 팀이 단체전에서 우승하면서 부족한 운영비에 보탬에 된데다 선수들이 우승 상금을 쪼개 생활자금을 보탰다. 조감독은 “베푼 만큼 돌아오기 마련인가봐요”라며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 감독의 역할은 목표를 세워주는 것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는 어렵더라도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선수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조 감독이 선수들에게 늘상 강조하는 것은 프로로서의 마인드다. 선수들에게 직접 게임을 지도하거나 함께 연구하는 일보다는 스스로가 왜 게임을 하는지, 또 목표가 뭔지를 설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가장 많은 우승자를 키워낸 그만의 특별하다면 특별한 지도법이다.
““모든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예요. 프로게이머는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만 성공할 수 있어요. 이 모든 것은 선수들 각자의 몫이죠. 제 역할은 그져 길잡이를 해주는 정도에 불과해요.” 그래서 그는 소속 선수들을 자신이 키웠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면 하고 싶은 것이 가장 많을 나이인데, 하고 싶은 것 참아가며 목표를 이룬 선수들을 고맙고 대견하게 생각할 따름이다. 조 감독의 눈에는 이들이 단순히 팀에 소속된 선수가 아니라 피를 나눈 동생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난달 말 끝난 통합 프로리그에서 3위를 차지했지만 사실 마음을 먹었으면 우승도 가능했다고 생각해요.”그가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도 선수들을 그만큼 믿고 있는 때문이었다. 실제로 GO는 박태민과 전상욱을 이적시킨 가운데서도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이를 두고 조 감독은 “사실 태민이와 상욱이가 빠진 것보다는 박신영이 전지훈련을 갔다와서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이 더 큰 손실이었다”며 아쉬워했다.
# “위상에 맞는 스폰서 어디 없나요”
“말 못할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이적은 없을 거예요.만약 또 다시 주전선수가 단 한명이라도 이적을 해야 한다면 그 전에 팀을 해체할 겁니다.”
스폰서 문제는 항상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혀온 짐이었다. 이렇다할 스폰서를 잡지 못하면서 벌써 다른 팀으로 이적시킨 선수가 6명에 이르다 보니 가슴 터지는 아쉬움이 한(恨)으로 남아있다.
다른 팀에서는 억대 연봉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날로 커가는 선수들이 연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생하는 모습이 다른 무엇보다도 그를 화나게 했다. GO를 원하는 기업이 적지 않음에도 “선수의 가치는 게임단이 만들어 줘야 한다”며 대기업만을 고집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판에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죠”왜 고생을 자처하느냐는 말에 씨익 웃으며 하는 말이다. 이런 여유는 아마도 팀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장 많은 우승을 일궈내고서도 아직 스폰서가 없는 GO가 누구나 탐낼만한 최고의 팀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그가 스폰서를 구하러 뛰어다니면서도 항상 당당함을 잃지 않게 해주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는 “e스포츠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e스포츠협회가 내실을 다질 수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할 때”라며 “전용구장 및 사업육성과 게이머 발굴 등 산재한 여러 과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게임단들이 스폰서를 잡는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순기기자@전자신문 사진=한윤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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