ㅊ게임 중독(中毒) 문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대구의 한 20대 청년이 PC방에서 무려 50시간 동안 게임을 즐기다 사망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의 여파다. 시민단체를 비롯해 기성세대들은 ‘바로 이때다’ 싶어 청소년들의 과도한 게임 이용을 법적·제도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게임 중독 논란이 불거질 수록 각종 규제의 벽이 높아지고, 시장이 위축될까 몹시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국민게임으로 불리우는 넥슨의 빅히트작 ‘카트라이더’는 NHN이 지난 7월 집계한 상반기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서민들의 영원한 꿈인 ‘로또’를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온라인 게임이 청소년들은 물론 전 국민적 관심사로 자리매김했음을 방증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문제는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이 급증하면서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돼 사회 생활까지 지장을 받는 등 준 중독성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게이머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 중독 문제가 더 이상 소수의 골수 게임마니아들만의 문제로 치부될 수 없을 정도로 저변이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천병철 교수팀이 경기도 중·고생 76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9% 정도가 중증 인터넷 중독 중세를 보이고 있으며, 게임을 좋아할 수록 증세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이정권 교수팀이 서울·성남 6개 PC방에서 888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한 결과에서도 중독 증세를 보인 유저가 3.4%에 달했다. 물론 중독 고위험군과 잠재적 위험군이 최근 낮아지는 추세라는 보고서(정보문화진흥원 인터넷이용통계)가 발표되는 등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현재 결코 적지않은 게이머들이 게임중독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 건전 게임 개발이 선행돼야
문제는 이들 게임 중독자나 잠재적 중독자들이 방치되거나 더 많은 중독자들을 대책없이 양산될 경우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게임산업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게임중독자들이 늘어날 경우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더욱 제고시켜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업도 육성하고, 게임문화도 건전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묘책은 무엇일까. 해법은 무엇보다 게임 자체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몰입성과 중독성이 강한 게임이 만연되는 상황에선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결국 결자해지란 말처럼 게임업계 스스로 마약처럼 유저들을 붙들어드는 중독성보다는 게임성 자체로 승부할 수 있는 건전한 게임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니파크 김홍규사장은 “중독을 유도하는 게임을 만들어 놓고 중독을 자제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근본적으로 유료화 모델과 게임 콘텐츠 자체의 다양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전자 김종신 부장은 “중독이 된다는 건 그만큼 몰입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라며 “게임이 갖고 있는 이 몰입성을 교육적 요소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스포츠류의 캐주얼 게임들이 인기를 모으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오랜 시간 게임에 빠져야 하는 MMORPG 등 하드코어 게임과 달리 이들 캐주얼게임은 단기간에 승부를 내는 형태로 중독성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MMORPG마니아인 회사원 K씨(40)는 “게임 자체보다는 유저의 마인드에 달려있다”면서 “RPG도 길드 같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중독되지 않고 얼마든지 색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 두 마리 토끼 잡는 묘안 나와야
청소년들의 과도한 게임 이용이 핫이슈로 부상하면서 최근 시민 단체 일부에서 아예 심야시간에 청소년들의 게임이용을 제도적으로 막는 일명 ‘셧다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같은 단순 규제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질뿐더러, 산업을 위축시키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임중독 논란은 실제 게임산업 발전의 최대 ‘아킬레스 건’이다. 게임 개발사 입장에서 보면 몰입성과 중독성이 높아야 보다 많은 유저들을 보다 오래 게임을 하도록 유도해 수익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게임중독으로 인한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확산되고, 이에따른 규제정책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이에따라 게임중독 문제의 해결을 ‘규제’에서 찾아선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게임산업이 디지털 콘텐츠 시대의 총아로서 국가적으로도 차세대 성장 동력인 만큼 산업 육성이란 기본 정신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 부의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아햐 한다고 강조한다.
중독문제도 해결해고 산업도 육성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클린PC방 사업을 추진중인 쿠도F&S의 김용식사장은 “게임을 공급하는 입장에서 수요자들에게 게임중독에 대한 지속적인 계도 캠페인을 통해 스스로 중독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범 정부 차원 대책 마련 필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때 게임중독 문제와 산업 육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미래 우리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의 대표적인 놀이문화로 인한 문제인 만큼 이대로 방치해선 곤란하다.
따라서 이제는 게임중독 문제를 정부, 관련기관, 업계 등을 망라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의 추격으로 온라인 게임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중독이 언제까지나 산업의 발목을 잡아선 안된다는 의미이다.
우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존처럼 게임중독 관련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사후약방문식 처방전을 내놓는 식의 대응으론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보다 체계적이고 중·장기적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 이런 점에서 문화부가 최근 온라인게임의 역기능을 해소하기 위해 별도 예산을 준비중이어서 주목된다. 문화부는 예산확보가 이루어진다면, ▲기능성 게임개발 지원 및 보급 ▲게임중독 클리닉 운영 ▲게임역기능 예방교육 ▲건전게임 문화사업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게임업체들 스스로의 몫도 적지않다. 실제로 이미 게임산업협회는 게임중독 예방 차원에서 게임중독에방센터 운영과 교사와 학부모들에 대한 게임 이용 지도 프로그램 보급사업을 준비중이다. 게임산업협회 최승훈 정책국장은 “게임중독 문제는 상담과 예방도 중요하지만, 청소년들이 적절하게 게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미디어 교육이 중요하다”면서 “협회는 중·장기적으로 청소년이용자 미디어교육으로 확대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게이머들 스스로의 절제된 게임 이용 마인드 조성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건전한 게임문화 조성의 주역이 바로 이용자들이기 때문이다. 게임산업협회 김영만 회장은 “게임은 우리 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고, 그 주역이 바로 게이머들”이라며 “아직 게임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여러가지 문제점들과 주위의 우려가 존재하지만,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우리 게임문화도 이제 성숙해 가는 단계로 성정해 가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이중배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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