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음지에서 일한다

문민정부 시절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도청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도청이라는 불법행위를 통해 드러나서는 안될 일들이 공개된 데다 이제는 공개 배경을 둘러싸고 갖가지 소문이 횡행하고 있다.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는 말은 안기부의 부훈이었다. 안기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국가기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음지에서 일하는 안기부가 국가와 국민이 아닌 권력을 위한 기관이라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임이 입증됐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부훈 또한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뀐 것은 국정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권력이 아닌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담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양지에서 일하는 사람만으로는 굴러가지 않는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많은 사람은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쪽으로 천천히 변화된다. 국정원을 포함한 공무원들은 음지에서 일하는 대표적인 직업 중의 하나다. 수많은 공무원 각각의 노력이 한데 모여 정책으로 입안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이 개선된다.

 최근 우리나라 SW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발표되고 있는 각종 정책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관련 공무원들의 노력이 배어난다. 대부분 IT전문가가 아닌 공무원이 전문가 집단인 SW기업의 의견을 수렴하고 타 산업과 형평성을 고려하면서 바람직한 정책을 수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담당공무원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의견도 맞다. 하지만 관례를 무시하고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과거 복지부동의 전형, ‘철밥통’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던 공무원들에게는 엄청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미래가 SW에 달려 있다는 공감대가 있지 않았다면 과중한 업무는 물론이고 동료 공무원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SW산업 발전을 위한 핵심적인 지금의 정책들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음지에서 묵묵히 일해 온 행자부, 교육부, 정통부, 예산처 등 SW관련 공무원들의 노력은 한국의 SW산업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다.

  양승욱부장@전자신문, sw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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