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업체들 "이제는 외형보다 내실이다"

 국내에서 성장 일변도 전략을 펴왔던 외국계 컴퓨팅 기업들이 최근 들어 실적 중요도를 매출보다 수익에 두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국내 컴퓨팅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공격적인 경영이 어려워짐에 따라 영업 전략은 물론이고 사업 구조까지 수익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한국HP, 한국EMC, 시만텍코리아 등 주요 외국계 기업은 수익을 기준으로 하반기 사업 계획을 짜고, 시장 공략에 들어갔다.

 ◇수익이 최우선=한국HP는 최근 본사 차원의 조직 개편이 단행되면서 수익 개선을 강조했다. 불필요한 조직을 없애고 유휴 인력을 정리, 수익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상반기에 이미 수익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을 통해 인원을 5% 가량 줄였다.

 최준근 한국HP 사장은 “국내 컴퓨팅 시장이 되살아나더라도 과거처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기업 경영 기조를 수익 중심으로 완전히 전환했다”고 말했다. 한국HP는 하반기에도 조직 개편을 포함한 수익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을 준비중이다.

 박리다매 전략으로 유명한 델인터내셔널은 수익 개선을 위한 신규 아이템 발굴에 나섰다. 현재 PC와 서버 판매만으로 일정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본사와 협의해 수익성이 높은 아이템을 국내에 들여올 계획이다. 델인터내셔널은 현재 새로운 수익 사업으로 프린터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전한승 델코리아 상무는 “최근 들어 판매와 운영 비용 최소화를 통해 마진 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다”며 “본사 차원에서 수익 가이드 라인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사업 구조도 전환=HP는 지난 19일 조직 단순화를 통한 비용 절감을 위해 영업 조직인 커스터머솔루션그룹(CSG)의 인력을 3개 비즈니스그룹(TSG·IPG·PSG)으로 흡수한다고 밝혔다. HP는 조직 개편을 통해 2007 회계연도에 19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준근 사장은 “본사의 조직 개편 외에도 지사 차원의 수익 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다”며 “서버 시장은 경쟁이 치열해 수익을 내기 어려운만큼 하반기에는 신규 사업인 애플리케이션임대서비스(ASP)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EMC는 올해 최대 수요처로 꼽히는 중소기업(SMB) 시장에서 스토리지 업체 간 가격 경쟁으로 수익 확보가 어려워지자, 솔루션과 서비스 사업을 강화해 수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개편했다.

 한국EMC의 전완택 상무는 “사업구조 개편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비중이 47대 53 정도로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한국EMC도 하반기에 컨설팅 사업을 출범시키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발족하는 등 신규 사업을 통한 수익 개선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사장 평가 기준도 바뀐다=이 같은 움직임은 국내 지사장들의 평가 기준을 바꿔 놓고 있다. 국내 진출 10년 이상된 기업들은 공격적인 지사장보다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지사장을 선호하기 시작됐다.

 한국IBM,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한국후지쯔 등 올해 신임 사장을 선임한 기업들이 내부 승진을 통해 CEO를 발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내부 사정을 잘 알아야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 개선을 이끌어내고 본사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 외국계 기업 지사장들의 화두는 수익”이라며 “사업 계획도 매출이 아니라 수익을 기준으로 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컴퓨팅 업계 한 CEO는 “본사와 사업 계획을 최종적으로 확정짓기 위해서는 수익률을 제시해야 한다”며 “목표 매출을 달성하더라도 수익을 달성하지 못하면 본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익종기자@전자신문, i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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