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돈가뭄` 풀리나

게임판에 다시 돈이 몰릴 조짐이다. ‘게임은 더이상 IPO(기업공개)가 어렵다’는 이유로 등을 돌렸던 벤처캐피털들이 게임시장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2년 이후 맥이 끊겼던 게임펀드 결성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벤처펀드에 출자하는 ‘펀드 오브 펀드’(fund of fund), 즉 모태펀드가 일제히 가동하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SK·KT·삼성 등 대기업들과 메이저 게임퍼블리셔들이 경쟁적으로 게임쪽에 배팅을 늘리고 있다.

이에따라 ‘부익부빈익빈’ 현상 속에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 개발사들은 오랜 ‘돈가뭄’에서 벗어날 꿈에 부풀어있다.

캐주얼 게임 개발에 올인한 A사는 최근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베타 테스트를 앞두고 마케팅 플랜을 짜야하는데 금고가 바닥난 탓이다. 퍼블리셔나 창투사를 통한 프로젝트 투자쪽을 택했지만, 데뷔작이라 선뜻 투자하겠다는 곳이 없다.

A사 사장은 “이러다간 베타도 못해보고, 게임을 접을 판”이라고 토로한다. 2년전부터 MMORPG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B사도 마찬가지. 두 차례 클베를 무난히 마쳤지만, 대주주가 돌연 자금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설상가상 개발자들마저 대거 회사를 떠나 게임을 접어야할 판이다. 월 매출 100억 이상에 50∼60%대 영업이익을 내는 대박기업이 판을 치는 게 국내 게임판이지만, 그 이면에 많은 중소 개발사들이 자금난 속에서 생사를 건 ‘외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1000p(거래소)-500p(코스닥)’시대에 접어들고, 하반기 벤처자금 시장에 파란등이 켜지면서 게임시장의 ‘돈맥경화’가 해소될 것이란 기대섞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웹젠 이후 끊어졌던 게임업체 IPO가 윈디소프트를 시작으로 다시 물꼬가 터지고, 백도어리스팅(우회등록)과 M&A가 활성화돼 투자회수(exit)의 길이 넓어지면서 자본의 물길이 게임쪽으로 향하고 있다. 한솔창투 게임펀드 매니저 박재민 차장은 “자본시장은 분위기에 좌우된다.

특히 게임산업은 투자성공시 수익율이 상당히 높으며, 다른 콘텐츠에 비해 투자 자금사용 및 회수절차의 투명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 1조원대 벤처펀드가 밀려온다

게임시장이 하반기를 기점으로 돈가뭄에서 해갈될 것이란 기대감을 낳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반기에 벤처펀드 결성이 봇물터지듯 이어질 것이며, 결국 자연스럽게 이중 일정부분이 게임쪽으로 유입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실제 게임시장이 성장 잠재력이 여전히 큰데다 캐주얼게임 부상과 해외 진출의 잇따른 성공으로 재평가받으면서 벤처펀드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에 게임이 핵심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반기 결성될 벤처펀드는 줄잡아 약 1조원에 육박한다.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지난달 출범한 중기청 모태펀드인 ‘한국벤처투자’를 비롯해 벤처펀드 출자가 활발한 국민연금관리공단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가 운용하는 한국IT펀드(KIF) 등이다.

우선 한국벤처투자의 경우 하반기에만 약 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할 방침이며, 이미 1차로 10여개 펀드 위탁 운용사 선정 작업에 착수, 현재 38개 창투사가 경합중이다.

국민연금 자금을 모태로 한 펀드는 최근 KTB·동원창투·동양창투·산은캐피탈·네오플럭스·KB창투 등 6개 벤처캐피털이 지원기업에 선정돼 각각 200∼300억원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펀드 결성에 들어갔다. 국민연금이 80%를 출자하기 때문에 총 펀드 결성규모는 2000억원에 육박할 전망.

 KIF가 150억원씩 6개 창투사에 총 900억원을 지원하는 KIF펀드 역시 8월안에 펀드결성을 완료, 본격 투자에 나선다. 총 펀드의 80% 가량을 출자하는 KIF펀드에는 무려 45개 벤처캐피털이 몰려들었다.

벤처캐피털업계에선 3분기 안으로 무려 20개가 넘는 중대형 펀드가 한꺼번에 출범, 게임을 포함한 벤처투자 시장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네오위즈·CJ인터넷 등 게임퍼블리셔와 mvp창투·한미열린·한솔창투 등 일부 창투사들이 게임 전문펀드 결성을 적극 추진중이다. mvp창투 남기문이사는 “어떤식으로든 올해 안으로 약 150억원 전후의 게임펀드를 만들어 게임쪽에 투자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중견 창투사의 한 관계자는 “벤처펀드 결성에 대비해 주력 투자업종으로 반도체, LCD, 게임 등을 꼽아놓은 상태”라며 “상당수 창투사들이 게임을 포함한 디지털 콘텐츠를 주 관심 종목에 편입한 상태이며 다시 게임을 보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 고정석회장(일신창투 대표)은 “정부가 벤처캐피털이 경영을 목적으로 벤처기업 최대 지분 투자까지 허용하는 등 투자 환경이 개선돼 벤처투자가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다시 르네상스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게임투자 탄력붙은 ‘산업자본’

퍼블리셔들의 투자가 가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주목할만한 변수다. 벤처캐피털의 경우 펀드가 많다해도 게임투자 비중을 어느 정도로 가져갈 지 유동적이지만, 퍼블리셔는 전적으로 게임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에서 실질 체감지수가 다르다. 특히 메이저 퍼블리셔의 투자는 산업자본에 의한 재투자란 점에서 게임산업의 선순환 사이클을 만드는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퍼블리셔 중 가장 눈에띄는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네오위즈, CJ인터넷, NHN, KTH, 엠게임, 넥슨 등 게임포털 운용사들. 특히 네오위즈와 CJ는 하반기에도 투자를 주도할 전망이다. 오승택 네오위즈 퍼블리싱사업본부장은 “자체 자본과 창투사와 연계한 게임펀드를 포함해 600여억원을 확보해 크기에 상관없이 좋은게임, 좋은 개발사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여기에 ‘신야구’와 ‘그라나도 에스파다’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한빛소프트와 게임포털 시장에 뛰어든 엔씨소프트와 그라비티, 게임쪽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손오공 등도 강력한 자본력을 무기로 ‘게임사냥’에 뛰어들었다.

SKT·KT 등 통신 대기업들도 빼놓을 수 없다. SK는 거대 자본력을 바탕으로 게임 M&A를 물밑 추진하는 동시에 IMM창투, MVP창투 등과 500억원대의 엔터테인먼트펀드를 만들고 있다. KT 역시 별도 콘텐츠 펀드를 만들어 게임투자를 재개할 움직임이다. 또 ‘라그나로크’ ‘붉은보석’ 등 성공적 퍼블리싱으로 자신감이 붙은 삼성전자 역시 게임투자를 소리없이 늘려가고 있다.

권강현 삼성전자 상무는 “자금은 얼마든지 있다. 투자가치가 있는 게임이라면 자금에 구애받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코스닥 상장 IT기업들을 중심으로 중견기업들도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주가 부양 차원에서 게임쪽 배팅에 가세한 상태다.

# 자본 왜 다시 게임쪽으로 향하나

게임시장에 2년만에 다시 자본이 쏠리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무엇보다 IPO·M&A·백도어리스팅·프로젝트파이낸싱 등 투자 이후 회수의 길, 즉 출구쪽이 넓어진 때문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코스닥 심사기준 완화, M&A 시장 활성화 등으로 게임투자 회수가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코스닥 등록기준 완화로 윈디소프트, 엠게임, JC엔터테인먼트, 컴투스, 위메이드, 조이온 등 상당수 게임업체들의 IPO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중박 이상의 게임을 가진 개발사들은 M&A나 백도어리스팅 후보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특히 지분투자 대신 영화처럼 프로젝트 투자가 일반화돼 조기 회수가 가능해진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설령 벤처펀드가 대거 결성되고 산업자본이 밀려든다고 해도 과거처럼 묻지마식 투자로 인해 불특정 다수의 기업이 수혜를 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제하며, “그러나 자본 시장에서 게임비즈니스가 새롭게 평가를 받고 있어 앞으로 ‘자본투자-게임개발-서비스-투자회수-재투자’라는 선순환의 사이클을 마련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이중배기자@전자신문>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