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에서 의미있는 작업이 있었다. 하나는 정보통신부와 행정자치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공개SW 정보시스템 구축 가이드’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자치부가 각 정부기관 및 지자체에 배포한 ‘행정기관 홈페이지 평가지표’ 중 웹 접근성 준수 지침이다.
‘공개SW 정보시스템 구축 가이드’는 말 그대로 공공기관이 공개SW 도입을 원할 경우, 필요한 세부적인 정보를 명시한 것이다. 공개SW란 소스코드가 공개된 것으로 적절한 형태의 공개SW 라이선스를 통해 배포되는 SW를 말한다. 웹 접근성은 누구나 자유롭게 홈페이지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으로, 홈페이지가 갖춰야 할 가독성, 일관성, 심미성 등 일반적인 사항과 장애우 등 정보 소외계층을 위해 갖춰야 할 사항 그리고 운용체계 및 브라우저에 관계없이 접근이 가능한 매체접근성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두 가지는 내용면에서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모든 사용자 환경은 웹기반으로 구축되고 운용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리눅스, 매킨토시 등 다양한 사용자 환경의 지원을 위해서는 다양한 브라우저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 홈페이지의 경우, 여러 가지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특정 브라우저로는 사이트 접근이 불가능한 등 접근성의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위의 두 가지 지침과 권고는 현재 IT 산업환경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공개SW 육성에 대한 논의는 라이선스, 불법복제, SW 유지보수, 구매절차, 국내 SW산업구조의 영세성, 국가의 R&D역할 등 기존의 SW산업이 안고 있었던 모순들을 드러내는 유발기제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웹접근성 이슈 또한 소수의 SW 사용자를 위한 배려라는 공익적 문제와 특정 벤더에 지나치게 종속적인 산업구조를 드러냈다.
라이선스와 관련해 공개SW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적재산권이 더욱더 존중되고 SW 불법복제에 대한 감시 또한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SW 구입에는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가격 대비 성능에 대한 고민을 할 터이고, 하나의 대안으로 공개SW를 고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지보수의 경우, SW는 그 속성상 판매 후 지속적인 패치와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SW 수요자 대부분은 SW 구입후 무상 유지보수 기간이 지나면 유지보수계약을 하지 않으며, 혹 계약한다고 해도 공급사의 인건비가 보전되기 어려운 낮은 요율의 유지보수를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궁극적으로 SW회사의 수익성을 약화시키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기존 전유 SW는 고가의 초기 구입비로 낮은 유지보수비를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는 데 반해, 공개SW는 유지보수가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더 취약하다.
웹 접근성 문제도 유사하다. 웹접근성 논의는 공급자에게 결코 반가운 것이 아니다. 웹 접근성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동일 작업에 현재보다 더 많은 공수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은 웹 에이전시 회사들의 수익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특정 브라우저에서만 지원되는 플러그인을 이용한 응용프로그램의 제공 문제는 웹 에이전시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솔루션 업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요자에게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접근성에 관한 권고안에 따르면 단순하면서도 충분히 미려하게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으나, 화려한 초기화면을 선호하는 사용자들과 평가자들에게는 홈페이지 자체의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에 대한 인식과 대안을 위한 진지한 모색은 오히려 현재 답보상태에 빠진 SW산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공개SW로 인해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는 SW산업 전체의 문제이므로,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상용SW 업체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가 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개SW만 사용하는 경우, 상용SW만 사용하는 경우, 두 가지를 적절하게 혼합하는 경우를 조사한 결과 혼합 사용시 비용대비 효과가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결국 공개SW는 SW 생태계를 고갈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부하게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각국 정부가 왜 공개SW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또한 웹 접근성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면 열악한 홈페이지 개발비, 홈페이지의 아키텍처 설계에 관한 논의,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의 다양한 플랫폼 지원방안 개발 등으로 인해 국내 IT산업의 수준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발전한다면 미국의 경우처럼 향후 웹 접근성 준수가 법적으로 의무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놀랍거니와,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이를 한 단계 한 단계 발전시킨다면 SW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좋은 열매를 맺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출품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처럼, 이러한 표준 준수가 수출입시 진입장벽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박혁진 리눅스코리아 대표이사 hjpark@linux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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