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를 넘어 시스템 강국으로](3부)정상으로 가는 길②시스템-반도체 협력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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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즈음에 나와 우리 직원 모두에게 희망적인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2001년 큐리텔에서 내장형 카메라에 대한 개발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중략). 2002년 큐리텔에 카메라 컨트롤 프로세서(CCP)를 공급한 뒤, 큐리텔은 세계 최초로 33만 화소급 카메라를 내장한 휴대폰을 출시했다. 큐리텔에 공급한 CCP가 어느 정도 기술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삼성전기를 통해서 인연이 있었던 삼성전자의 휴대폰에 CCP를 장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결단의 순간들]이성민 엠텍비젼 사장 편 중에서…

◇엠텍비젼, 코아로직 성공의 비결은=지난 99년 설립돼 창업 5년 만에 지난해 1681억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반도체 벤처의 성공 신화로 꼽히는 이성민 엠텍비젼 사장의 에세이 중의 한 대목이다. 엠텍비젼이 코아로직·토마토LSI 등과 함께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창업 이전부터 시장을 내다보고 기술을 연마한 것과 함께, 시스템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실력 발휘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엠텍비젼은 당시 불모지였던 휴대폰 카메라 부분에서 세계 3대 휴대폰 업체 중 하나인 삼성전자에 ‘디자인 윈’ 함으로써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삼성전자에서 첨단 제품이 나올 때마다 24시간 협력 체제를 구축, 장기 협력체제를 통해 국내 대표 반도체 업체로 부상할 수 있었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벤처의 쌍두마차인 코아로직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창업자이자 대표인 황기수 사장이 오랜 기간 연마한 영상 기술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카메라폰 시장 진입을 준비하면서 카메라폰 반도체 개발 능력을 갖춘 업체를 찾던 LG전자가 ‘러브콜’을 보내면서부터다.

이후 LG전자와는 협조 관계를 유지하며 신제품 개발할 때마다 함께해왔고, LG전자의 미국 수출이 늘면서 코아로직의 매출도 급성장하게 됐다. 코아로직은 LG전자와의 오랜 인연을 바탕으로 삼성전자를 비롯해 중국의 레노버모바일 등과 다양한 거래처를 확보하는 등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윈­-윈’을 위한 시도들­=엠텍비젼과 코아로직의 성공 신화에는 시스템업체와의 관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이 국내 모든 업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전자신문과 IT-SoC협회가 실시한 업계 대상 설문에서 시스템업체와 협력이 잘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하 ‘잘되는 편’이라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절반인 50%가 ‘보통’을, 나머지 35%가 ‘잘안됨’이라고 말해, 상위 몇몇 업체만이 실질적으로 시스템업체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IT-SoC협회, 소프트웨어진흥원의 IT-SoC사업단 등에서는 국산 반도체가 국내의 경쟁력 있는 시스템산업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양측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 과제를 추진해오고 있다. 연구 및 개발을 단위별로 구분하고 결과물을 ‘규격품’화해 분업 및 협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시스템 업체와 연계 강화 부문에서 요소 기술별 및 제품별로 시스템 업체와 부품업체를 ‘클러스터링’해 회사의 규모와 역량에 맞는 역할을 분담하자는 시도가 있다.

이러한 취지로 우선 ‘지상파DMB 플랫폼 개발’을 과제로 해 지난해 초부터 중소 시스템업체, 반도체업체, 솔루션 업체들이 모여 수시로 회의도 하면서 모범적인 사례 구축을 시도해왔다. 이러한 시도 덕분인지 적어도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부분에서는 튜너IC, 베이스밴드 칩, 멀티미디어 칩 등 핵심 칩이 국산화되기도 했다.

◇아직은 역부족=그러나 엠텍비젼, 코아로직, 토마토LSI 등 이외에는 아직 상용화를 시켜 ‘큰 돈’을 벌어들인 업체와 반도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전히 ‘시스템­-반도체 협력’이 겉돌고 있는 셈이다. 시스템업체와 반도체 설계업체 간에는 아직 서로에 대한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바처럼, 반도체 벤처 업체들은 시스템업체가 주로 외국 기업을 선호해(42%) 국산 부품이 발 딛을 틈이 없다는 지적을 했다. 칩 업체 입장에서 우수한 칩을 가지고 가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고 많은 벤처 업체들이 한결같이 지적했다.

하지만, 시스템업체 입장에서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시스템업체들은 ‘높은 개발 비용’, ‘개발기술의 시장성 부족’, ‘적합한 공동개발업체의 부재’ 등의 이유로 협력 관계 구축이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중소 시스템업체들은 칩 업체와 상당기간 협력을 통해 우수한 제품을 공동으로 개발하더라고, 대기업에서 칩 업체에 독점 납품 요청을 해오며, 공동 개발이라는 ‘의리’를 무시하고 떠나버리는 등 동반자 의식이 결여됐다는 비판도 나오는 실정이다.

◇상생의 방법은=칩 업체들이 협력 활성화를 위해 내세운 해법은 정부 차원에서 ‘시스템­-부품 공동 연구개발 지원’(60%)을 압도적으로 꼽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무의미한 논쟁보다는, 앞으로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갖춰갈 수 있는 시스템 분야에서 협력하는 업체에 정부 지원 자금 들을 우선적으로 할당하는 등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부품 회사를 계열사로 갖추지 못한 시스템 업체와 반도체 업체간의 협력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설문에 직접적으로 응답하지 않았지만, 업체들이 요구하는 것 중 하나는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자체적으로 반도체 설계에 몰두하기 모다, 과감하게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부품업체를 거느린 시스템 업체들이 실질적으로 자기 부품으로 제품을 완전하게 구성하기보다는, 가격 협상용도로 ‘인소싱’ 제품을 활용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벤처업체 사장은 “대기업의 반도체 부품 계열사에서 메모리 반도체 성격을 지닌 LCD드라이버IC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시스템반도체가 몇 개나 있는가를 유념해야 한다”며 “결국 모바일 기기, 디지털TV 등 국내가 선도하는 분야에서는 창의력 있고 민첩한 시스템반도체 업체와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차세대반도체성장동력사업단 조중휘단장

“정부가 다음 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차세대성장동력 아이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업의 쌀’인 반도체는 거의 대부분의 과제와 직간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세트업체가 목표하는 시스템반도체 개발은 반도체업계와 세트업계 간에 유기적인 협력하는 구조가 필수적입니다.”

조중휘 차세대반도체성장동력사업단장은 시스템반도체는 차세대성장동력사업의 승패를 좌우하게 될 핵심요소이며, 차세대성장동력 육성 과정에서 필요한 시스템 설계기술의 반도체화(집적)를 외국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기술로 개발할 수 있는 대·중소기업 윈-윈 환경 조성이 ‘시스템반도체 강국 도약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10대 과제로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차세대성장동력사업 가운데 디지털콘텐츠·차세대전지·바이오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이 시스템반도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스템반도체는 핵심기술을 반도체화한 것으로, 차세대 동력이 되는 기술을 칩 속에 집적함으로써 칩 자체의 고부가가치화뿐 아니라 차세대 세트 제품의 경쟁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세트와 반도체업계 간 협력기반 조성이야말로 세트산업의 경쟁력을 시스템반도체로 이어가는 첩경입니다. 기업별 전문 핵심역량을 바탕으로 기능별 분업체계를 확립하고 제품기획에서 설계·시제품·대량생산까지의 유기적 협조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시스템반도체의 국산화는 핵심경쟁력 확보는 물론 해외 로열티 최소화와 고부가화를 가 가능케 해 세트업계와 부품업계 모두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계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국내 업체가 육성한 해외 팹리스

 미디어텍(www.mtk.com.tw)은 대만 최대의 팹리스 업체다. 지난 97년 설립돼 주로 광저장장치(ODD)와 DVD플레이어 IC 등을 개발, 공급해온 미디어텍은 지난해 매출액은 400억 대만달러(약 1조 2000억원), 영업이익은 143억 대만달러 (4300억원)에 이른다. 특히 이 회사가 지난해 스톡옵션 등을 통해 전체 임직원들에게 나눠준 성과급이 우리 돈으로 1인당 평균 약 30억원에 달해 대만 대학생이 ‘꿈의 직장’으로 꼽기도 한다. 그런데 미디어텍의 성장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기업은 다름 아닌 삼성전자와 LG전자였다. 미디어텍은 지난 98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광 스토리지(ODD) 사업부를 방문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48배속 CD롬 드라이브의 핵심 반도체인 디지털신호처리기(DSP)와 신호증폭 IC(RFIC)를 개발했으니 채용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당시 CD드라이브 핵심 반도체는 소니, 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이 독차지해왔다. 삼성전자는 도시바 IC를, LG전자 역시 일본 소니의 IC를 사용해왔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디어텍이 워낙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어서 처음에는 채용을 꺼렸다.

그러나 부품 다변화 정책 추진과 때마침 광저장 장치의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기존에 반도체를 공급해온 일본반도체 업체들이 자사 수요부터 충족함에 따라 미디어텍 제품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기존 협력사의 반도체보다 더 저렴한데다가 기술대응도 일본기업보다 빨랐다. 삼성전자는 미디어텍을 핵심 반도체 협력업체로 설정하고 공동 개발을 진행했다.

거의 같은 시기 LG전자 역시 미디어텍과 공동으로 CDRW와 DVD기능을 동시에 지원하는 콤보드라이브 개발에 착수했다. 미디어텍은 국내 대기업들이 원하는 칩을 적기에 내놓았으며 세트 업체에 가장 저렴하게 좋은 성능을 낼 수 있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했다. 광스토리지 분야 1, 2위를 다퉜던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앞다퉈 미디어텍의 칩을 채택하고 공동 개발까지 진행하다 보니 매출을 기하급수로 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텍의 성공요인으로는 경쟁 반도체 업체보다 더욱 저렴하게 세트 제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고 UMC의 자회사로 반도체 공급 능력이 안정적이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반도체 업체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텍의 기술 개발 능력과 파운드리는 성공의 전제 조건이었을 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전폭적으로 밀어주지 않았다면 현재의 미디어텍이 있을까 의문”이라며 “국내 세트기업이 팹리스기업을 이처럼 지원해줄 경우 국내에도 ‘미디어텍’ 신화는 꿈만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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