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소 고문(6·끝)

(6·끝)연구 발목잡은 분단현실

놀랍게도 국가의 국민 평균 수명은 에너지 소비량에 비례한다고 한다.

에너지 사용량이 많다는 것은 따뜻한 겨울,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 자연스럽게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건강하게 그리고 오래 사는 것이라면, 한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은 국민에게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에너지 자원 빈국인 한국은 에너지 자립이 곧 국가안보라는 점에서 ‘에너지 안보’란 말이 더 적절하고 많이 사용한다. 에너지 없는 나라는 그 나라의 존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80∼90년대 연평균 150억 달러치 에너지를 수입하던 것이 지난해에는 498억 달러나 됐다. 지난해 반도체와 자동차 총 수출액이 531억 달러였던 것에 비추어 보면 엄청난 액수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일찍 이것을 깨달은 뜻있는 분들이 이 땅에 원자력을 심기 시작하였고, 그동안 원자력인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원자력발전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할 때 국민소득이 80달러였다.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7%가 넘는 우리가 20기의 원자력발전소에서 40%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최고의 양질의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조국 근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짧은 시간에 우리나라를 원자력발전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표준형 원자로 개발과 핵연료 국산화 등 대형 연구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룬 이 땅의 자랑스러운 원자력 과학자들과 원자력발전소를 안전하게 유지·보수·운전해온 잘 훈련된 많은 원자력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나는 핵연료 국산화 책임자로서 8년간 한국원자력연구소와 핵연료주식회사를 기관장을 겸직하면서 핵연료주식회사 건설에 직접 참여하였었다. 89년 한국핵연료주식회사가 준공되면서 핵연료 국산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우라늄 농축기술 국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매년 우라늄 농축비로 해외에 수천억을 지불하고 있다.

나같이 평생 핵물질을 만지고 산 사람의 소망이 있다면 이 땅에 우라늄 농축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오직 평화적 목적만을 위해서.

2000년 이곳 원자력연구소에서 순수한 호기심과 학문적 동기 그리고 평화적인 목적의 레이저 우라늄 농축 실험이 있었다. 이 순수한 실험이 잘못 왜곡되어 지난해 국내·외에 논란거리가 되고 말았다. 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으로 평화적인 목적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마저 묶여버린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 당시 실험을 하도록 수락했던 사람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기관장이 가지는 고뇌와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도전정신도 함께 이해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당시 우라늄 농축시설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평화적 목적을 위한 우라늄 농축기술만이라도 갖고 싶었던 것은 나 같은 핵연료 전문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닐까?

아주 가까운 장래에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아,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같이 우리도 모든 연구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ischang@kae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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