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장인순 한국원자력연구소 고문(2)

(2)가난으로 수학자의 길 포기

 지난 4월. 6년간의 한국원자력 연구소 소장 임기를 마치면서 많은 언론사와 이임 관련 인터뷰를 했다. 퇴임 후의 할 일에 대해서 묻는 질문에 나는 시간이 나는대로 초·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좀 가르쳐 보고 싶다는 이야기와 원자력 홍보를 열심히 해 보겠다는 말을 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 보겠다고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초·중·고 학생시절 수학을 잘한 것은 아니지만, 수학을 대단히 좋아해서 다른 모든 과목을 제쳐 두고 물리와 화학 특히 수학공부를 열심히 했다. 내 책상 위에는 책의 80%가 수학 관련 책으로 꽉 차 있었다.

선천적으로 암기과목에는 흥미가 없어서 열심히 수학문제를 풀었었고, 고2 때는 그 당시 사관학교를 진학하겠다는 친구의 수학 가정교사를 하기도 했었다.

논리가 정연하고 해답이 확실한 수학이란 학문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곳곳에 우리들의 삶과, 함께하는 자연의 가장 중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수학자의 꿈을 접어야 했을까? 50년대는 그야말로 보릿고개와 가난이 상식으로 통하던 연간 1인당 국민소득 70∼80 달러 시대였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간 기억이 없을 만큼 가난과 함께 했던 시대였다.

대학진학을 고민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화학을 가르치셨던 고3 담임선생님께서 “가난한 사람은 수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고, 많은 고민 끝에 수학자의 길을 포기했었다.

그 후 주위에서 의과대학을 권했지만 전혀 흥미가 없었고, 역시 순수학문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물리나 화학 중 하나로 선택해야하는데, 당시 화학 선생님이셨던 담임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화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화학과에서 공부하면서 수학에 대한 아쉬움을 버리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돌이켜 보면 아쉽기는 하지만 화학을 선택한 것은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분야의 화학 중에서도 박사과정에서 불소화학을 전공한 덕택으로 원자력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원자력과의 만남은 내 생애에 최고의 행운이었다. (참고로 불소는 우라늄금속을 만들거나 농축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UF4, UF6과 같은 물질이다.)

수학과 물리화학 중에서 선생님의 조언도 있었지만 최종선택은 나 자신이 한 것으로 화학을 선택하면서 내 안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삶은 바로 내가 책임지고 살아나가야 하는 나만의 삶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선진국은 바로 수학의 선진국과 통한다. 수학교육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작은 힘이지만 앞으로 시간 나는대로 청소년들과 즐거운 수학공부를 함께하며 그들에게 ‘과학의 꿈’을 키워줄 생각이다.

ischang@kaeri.re.kr

사진: 지난 99년 5월 장인순 원자력연구소장이 전국국공립대학 총장단을 대상으로 경수로 핵연료 집합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당시 장 소장은 핵연료 국산화 사업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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